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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계 인구’서 지방 회생의 답을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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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면적(763㎢)은 부산시와 맞먹지만, 인구는 고작 7813명. 한때 일본 굴지의 탄광지에서 관광지로 변모했지만 유일하게 재정이 파탄 난 시(市). 홋카이도 중부 유바리(夕張)시는 지방 소멸을 상징하는 기초단체다. 인구 감소율과 시 기준 고령화율이 전국 최고다. 인구는 전성기(11만6908명)의 6.7%이고, 65세 이상 인구가 50.8%(2018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 수두룩하다. 올해는 시를 관통하는 철도가 126년 만에 폐선됐다. 자랑거리라면 멜론이다. 낮과 밤의 기온 차로 당도가 높다. 올해 첫 경매에서 1개가 250만엔(약 2600여만원)에 낙찰됐다. 올 4월 38세로 당선된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지사가 유바리의 ‘미션 임파서블’과 씨름해온 전 시장이다.

한계 도시 유바리는 지금 새 도전에 나서고 있다. ‘관계 인구’ 창출 사업이다. 이주 인구도, 관광 인구도 아닌 지역 유대형 제3의 인구 만들기다. 대상은 유바리 기부자(고향 납세), 전직 근무자를 비롯한 팬과 연고자다. 이들을 ‘유바리 라이커즈(likers)’로 등록해 주민과 더불어 지역 재생을 꾀하고 있다. 사업은 커뮤니티 재구축과 역사문화 계승(기억 뮤지엄) 두 가지다. 유바리 밖 응원단과 인재의 지혜를 빌려 지역 과제를 해결하고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하려는 시도다. 관계 인구는 이주 예비군이기도 하다. 사콘 와타루 지역진흥과 주임은 “현재 등록자는 281명으로 시민을 포함한 (두 사업) 교류 이벤트 참가자는 800명”이라며 “이 자산을 지역 활성화로 연결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유바리에 관계 인구는 산소호흡기와 한가지다. 응원단에 유바리는 제2의 고향이다.

돗토리현 히노초(日野町)는 ‘고향 주민카드’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지역외 연고자의 등록을 받아 소식지를 보내고 교류 모임도 갖고 있다. 모임에선 히노초 시책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특산품 감수도 받는다. 외부 시각을 마을 만들기의 원동력으로 삼는 전략이다. 당초 목표는 인구(3050명)의 10분의 1이었지만 현재 등록자는 417명이다. 이들은 산간지 히노초에 둘도 없는 원군이다.

나라현의 역사문화지 아스카무라(明日香村)는 ‘논밭 오너 제도’를 도입했다. 5680명 인구에 고령화로 일손이 달리면서 도시 지원으로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다. 논 코스는 1년간 구획(100㎡·78곳)당 4만엔에 분양한다. 참가자는 직접 농사일을 하고 햅쌀을 최소 40㎏ 가져간다. 4월, 9월엔 지역민과 오너가 모여 축제도 연다. 오너 제도는 감귤·감나무와 죽순 등 8개로 확대됐다. 지난해 분양은 710건으로, 외국인도 참가하고 있다. 농촌과 도시가 부담과 즐거움을 나누며 공생하는 제도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성씨(姓氏)의 고향을 활용한 지자체도 나왔다. 도치기현 사노(佐野)시는 약 200만명으로 일본 최대 성인 사토(佐藤)씨의 뿌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올해부터 3년간 ‘사토씨 성지화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의 사토씨 참가와 더불어 기부도 끌어낼 생각이다. 시는 ‘사토 접대단’을 꾸렸고 ‘사토씨 서미트(summit)’도 연다.

관계 인구는 일본 지방 창생 정책의 새 화두다. 도시민의 지방 이주가 벽에 부딪히자 그보다는 못 하지만 단순 교류보다는 끈적끈적한 관계에 착안했다.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의 주역을 외부로 넓히면서 ‘고향’의 관점도 바꾸는 시도다. 관계 인구 창출사업에 나선 기초단체는 77곳이다. 이 중 5곳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의 지방 소멸 속도는 일본과 오십보백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대세다. 일본 움직임은 시사점이 적잖다. 통념을 깨야 새 길이 열린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