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수퍼라운드 한·일전이 열린 16일, 일본 도쿄돔 관중석에서 욱일기(旭日旗)를 들고 있던 50대 남성을 목격했다. 스포츠 현장 취재만 10년이 넘었지만,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직접 본 건 처음이다. 그에게 다가가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사진 촬영도 거부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WBSC)에 욱일기가 경기장에 등장한 데 대한 제재를 요청했다. WBSC 측은 “현재 소요나 물리적 충돌이 있는 게 아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욱일기를 허용했기 때문에 특별한 조처를 내리기 어렵다”며 “욱일기가 중계방송에 잡히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대답했다.
일본은 “욱일기가 고대부터 쓰였다”고 주장한다. 17세기부터 사용된 건 확실하다. 욱일기가 ‘극우’나 ‘군국주의’를 직접 상징하지 않는다 해도, 19세기 이후 일본군이 아시아 국가를 침략할 때 사용했던 건 확실하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가 사용한다. 이런 ‘욱일기’와 관련한 역사적 맥락을 국제 사회가 잘 모른다. 프리미어12 현장에서 만난 대만 SETN 샤오보상 기자는 “대만에선 욱일기를 잘 모른다. 모든 한국인이 욱일기 의미를 알고 있냐”고 되물었다. 욱일기 문제를 제기하는 건 한국과 중국, 북한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욱일기를 규제하는 스포츠 국제기구·단체도 거의 없다. 내셔널리즘이 강하게 드러나는 축구 정도가 규제한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반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노력으로 축구장에선 욱일기를 볼 수 없다. IOC는 FIFA와 달리 내년 도쿄올림픽 때 관중의 욱일기 사용을 막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12일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에는 일본 외무성 명의로 ‘욱일기는 제국주의 상징이 아니다’ 제하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 매체는 앞선 1일 미국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알렉시스 더든 교수의 ‘공포의 역사가 있는 일본의 욱일기 사용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지되어야 한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욱일기를 둘러싼 한·일의 치열한 장외여론전이다.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더 떠들자. 욱일기에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이, 많은 이들의 고통과 그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걸 더 널리, 더 소리 높여 알리는 거다. 민간 차원에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등이 꾸준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등도 유관 국제 스포츠 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입을 다물면 안 된다. 귀찮게 해야 한다. 도쿄올림픽 개막까지 248일. 욱일기 문제는 더 지속적으로 더 시끄럽게 제기해야 한다.
김효경 스포츠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