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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서 달 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괴테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한 것은 25세, 청년시절이었다. 그후 2백20년 도 더 지난 몇 해전 베츨러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바로 그 소설의 실명무대가 된 소도시다.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우람한 교회, 마을 어귀를 가로질러 흐르는 맑고 푸르른 강물, 그 주변의 어우러진 자연을 빼놓고는 별 볼일 없는 도시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승용차로 한 두어 시간쯤 되는 거리.
마침 교회 건너편의 한 카페에서 로맨스그레이는 되어 보이는 신사들과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젊은 베르테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신사는 주저 없이 부도덕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말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샤로테의 집은 교회에서 10분쯤 되는 거리에 있었다. 마침 그 곳을 견학 온 고등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들은 집게손가락으로 권총을 쏘는 시늉을 해 보이며 베르테르가 멋있는 청년이라고 대꾸했다.
세대차이도 차이지만 책을 읽고 느끼는 감회도 그런 것 같다. 나이에 따라 감회가 새로운 것을 우리는 일상 중에 체험한다. 중국의 수필가 임어당은 이런 말을 했다.
『청년시절에 책을 읽는 것은 문틈으로 달을 바라보는 것 같고, 중년시절에 책을 읽는 것은 자기 집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 같고, 노경에 이르러 책을 읽는 것은 창공아래 노 대에 서서 달을 바라보는 것 같다』
독서의 깊이는 체험의 깊이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다.
독서의 취향을 계절별로 나눈 것도 흥미 있다. 봄엔 문인들의 책을, 여름엔 사서를, 가을엔 선 철들의 책을, 겨울엔 경서를 읽는 것이 좋다고 임어당은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요즘 어느 사회조사에 따르면 다행히 20대들은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중년이후는 책과 거리가 멀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30대와 50대의 독서 율이 오히려 20대보다 훨씬 높았다.
올해도 이번 주부터 독서주간이 시작된다. 독서주간은 마치 밥 먹기 주간 같아 이상한 느낌도 들지만 이 기회에 책이라도 한 권사서 읽으면 아마 세상사는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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