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절반 '아웃' 혁신학교 5년새 1.5%뿐…엄마들은 이사 다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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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2중(가칭) 예비혁신반대 추진위원회 학부모들이 지난 7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신설 마곡2중 예비혁신 지정 결사반대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마곡2중(가칭) 예비혁신반대 추진위원회 학부모들이 지난 7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신설 마곡2중 예비혁신 지정 결사반대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이모(37·서울 은평구)씨는 3년 전 아이 입학을 앞두고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다른 동으로 이사했다. 이씨는 딸을 혁신학교에 보내기를 꺼리는데 이전 거주지에선 혁신학교에 배정될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올해 절반 가까이 탈락한 자사고와 대비 #"확대만 강조, 사후 관리 소홀" 비판 커져

이씨는 “아파트 근처 초등학교 3곳 중 한 곳이 혁신학교인데 엄마들 사이에 분위기가 안 좋다고 소문났다”며 “토론을 한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수업에 소홀해 학업 공백을 메우려면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정부가 왜 학생·학부모가 선호하지 않는 학교를 혈세까지 쏟아가며 지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교육감들의 핵심 정책인 혁신학교 확대가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사후 관리엔 소홀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009년 13곳에서 시작한 혁신학교는 올 9월 기준 총 1721곳으로 10년 만에 132배 늘었다. 전체 초중고(1만1657곳)의 14.8%에 이른다.

혁신학교는 입시와 지식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과 활동 등 학생 중심의 교육을 강조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의 호응을 얻었던 초창기와 달리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혁신학교도 자사고나 외고처럼 3~5년에 한 번 평가 결과에 따라 재지정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실제로 탈락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혁신학교 재지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동안(2015~2019학년도) 재지정 신청을 한 혁신학교 1012곳 중 탈락한 학교는 15곳(1.5%)에 그쳤다.

반면 자사고의 경우 올해 시도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받은 24곳 중 절반에 가까운 11곳이 탈락했다. 최근 ‘정치편향’ 교육 논란이 불거진 서울 관악구 인헌고도 지난 2012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다. 한때 교장과 교사 간의 갈등으로 교장이 명예퇴직하는 일까지 빚어졌지만, 서울시교육청은 2016년 이 학교를 혁신학교로 재지정했다.

당시 혁신학교 평가지표 중엔 ‘학교장의 리더십 및 학교 구성원의 학교운영에의 긍정적 참여의지’(5점)가 포함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리더십에서 나쁜 평가를 받아도 다른 요소에서 높은 배점을 받았으면 재지정 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정 지원만을 노린 ‘묻지마 신청’이나 ‘무늬만 혁신학교’가 속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청은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에 한 해 4000~500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서울의 한 혁신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교사는 “교육 혁신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 보다 교육청의 권유와 예산 확보 등을 이유로 일단 신청하자는 교장들도 많다. ‘무늬만 혁신학교’가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사봉중학교를 방문해 9년 차 혁신학교의 수업 혁신에 대해 교직원, 학부모, 학생 등과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사봉중학교를 방문해 9년 차 혁신학교의 수업 혁신에 대해 교직원, 학부모, 학생 등과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실관리로 인한 교육 질 저하는 학부모 사이에서 혁신학교 기피 현상이 커지는 이유다. 지난 7월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마곡2중(가칭)의 예비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5월에도 서울 강남‧광진구의 몇몇 초등학교가 혁신학교 전환을 추진하다 학부모의 반대로 무산됐다.

초2 아들을 혁신학교에 보내고 있는 김모(35·경기도 광명시)씨는 “학력저하 등을 이유로 초등학교 3학년 이후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고민하는 엄마도 많은데, 정부나 교육청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육계에서도 혁신학교의 철저한 성과 평가와 질 관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자사고·외고가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된다는 이유로 무더기로 탈락시킨 것처럼 혁신학교도 철저하게 평가해 문제가 있는 곳은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학교에 투입되는 국가 예산이 교육목적에 맞게 쓰였는지, 이를 통해 교육의 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며 “학력 저하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가 큰 만큼 이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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