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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新대권무림

그래도 조국이다, 살아서 돌아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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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⑥ 무림지존의 선택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온갖 귀계(鬼計)와 신산(神算)이 만나는 곳, 거기 지존좌가 있다. 지존좌는 경쟁자만 물리친다고 움켜쥘 수 없다. 더 무서운 힘이 있다. 현 무림지존이다. 천하 없는 무공을 지닌들 현 지존의 눈 밖에 나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무력(武曆) 1997년 회창객은 당시 지존 공삼거사와 척을 지면서 차기 지존좌를 쥐는 데 실패했다. 어디 잠룡들뿐이랴, 현 지존도 복마전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반환점을 돌고 나면, 연임이 금지된 지존의 힘은 급격히 약해진다. 누구를 후계자로 삼느냐에 따라 권력의 성패는 물론 자신의 운명도 갈린다. 현 무림지존 이니(二泥), 마침내 그의 시간도 반환점(11월 9일)을 지나고 있다. 싫든 좋든 차기 대권을 향한 용쟁투에 끼어들 수밖에 없다. 간혹 암흑의 힘, 금제된 힘을 써야 할 수도 있다. 그의 선택에 따라 무림 대권의 향배도 요동칠 것이다.

소주성, 적폐청산, 평화경제공 #내 일찍이 절세무공 셋을 익혀 #도탄에 빠진 강호 구하려 했으나 #검찰의 칼에 막혀 조국을 버렸네

春風秋霜
춘풍추상-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사롭되,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

청와대 여민관 액자에 적힌 글귀다. 작년 2월이었다. 저 글귀를 수족들에게 전하고 명심하라고 일렀었다. 그때만 해도 자신 있었다. 천하가 나의 춘풍추상을 믿었다. 내 말이 곧 법이요, 내가 곧 진리였다. 그런데 지금 이 꼴은 뭔가. 강호에선 ‘남에겐 가을 서리요, 자신엔 봄바람’이라며 비웃는다. 다 위선서생 조국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망칠 줄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슬슬 겁이 난다. 팔주야(八晝夜)만 지나면 내 치세도 내리막길이다. 한 발 삐끗했다간 천 길 나락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제대로 꼬였어, 쯧쯧.” 검찰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죄인을 잡는 나찰 같은 손-나찰수(羅刹手) 윤석열은 악수였다. 그를 검찰 수뇌에 앉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인정한다. 교만했다. 내 사형이자 16대 무림지존 바보 공자 노무현의 경고를 흘려들었다. 고 노무현은 일찍이 내게 무림지존은 다섯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여소야대. 둘째, 지역감정. 셋째 무림 언론. 넷째, 진영 권력. 다섯째, 검찰. 특히 검찰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주인을 물어뜯는 야수와 같다고 했다. 검찰공은 눈이 없다. 그들은 은밀하게 지존말살초식을 익힌다. 현 지존의 약점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무공이다. 지존의 힘이 강한 정권 초엔 숨죽이고 있다가 힘이 빠지는 정권 말이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는데, 누구도 당해내지 못했다. 오죽하면 바보 공자가 생전에 “역대 지존 중 이 다섯을 이겨낸 이가 없다”며 “나도 힘겹게 싸우는 중”이라고 했겠나.

노무현은 결국 패했다. 나는 다를 것이다, 다짐했다. 그는 내게 “지존좌가 어울리지 않으니, 절대 무공을 배우지 말라, 무림인이 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무공을 익혔고, 지존좌에 올랐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의 무공을 배웠고, 그의 초식을 즐겨 쓰지만, 그의 말을 모두 믿지는 않는다.

나찰수 윤석열은 사실 따로 처리할 것도 없다. 내버려 두면 된다. 그는 제풀에 망가질 것이다. 윤석열은 살아있는 권력과 세 번 싸웠다. 바보 공자 노무현 시절 대선자금을 까발렸고, 그네공주의 국정원 댓글을 파헤쳤으며 나의 왼팔 조국을 도려냈다. 승승장구했으니, 간이 배밖에 나왔을 것이다. 더 큰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민주노련과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민노련은 무림의 독버섯, 기필코 발본색원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내 첩보가 맞는다면, 그는 제 무덤을 파는 중이다. 민노련은 만만한 집단이 아니다. 강호에서 가장 어둡고 거친 무력이다. 전대 지존 그네공주를 끌어내린 것도 그 힘이다. 오죽하면 현 지존인 나도 조심하겠나. 건드려선 안 될 암흑의 힘을 건드린 대가는 클 것이다. 나찰수 윤석열, 그는 관을 보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세상에 다 나쁜 일은 없는 법, 나찰수 덕분에 공수처 설치가 힘을 받았다. 야권 무림이나 언론이 “북무림의 보위부, 독일의 게슈타포”라며 반발하지만 헛소리다. 공수처야말로 주인을 물지 않는 충실한 권력이 될 것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다. 한 번 더 밀리면 야권 무림과 나찰수는 나까지 물어뜯으려 들 것이다. 자칫 나도 전임과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 무림옥이라니!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공수처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내년 총무림대회가 승부처다. 꼭 이겨야 한다. 야권 무림을 갈라놓고 비무(比武) 규칙을 바꿔서라도 이겨야 한다. 무림의 수레바퀴를 크게 왼쪽으로 돌릴 것이다. 반드시. 개나리가 피는 춘삼월, 강호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노무현이 아닌 문재인임을.

관건은 경제다. 강호인들은 “정치는 망쳐도 용서하지만, 경제를 망친 지존은 용서하지 않는다.” 나도 잘 안다. 내가 연일 상계(商界)를 찾아 “우리 삼성, 멋진 현대”를 외치는 것도 그래서다. 며칠 전엔 지존 취임 후 처음으로 새마을운동본부까지 찾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좌파사회주의공을 폐기할 수는 없잖은가. 그러니 “우리 경제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우길 수밖에. 그런 나를 빗대 요즘 강호엔 이런 시구가 유행한다고 한다.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만 있을 뿐, 잘 가고 있다는 실체는 없다. (經濟有治善之說, 而無經濟之實)”

맞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서툴고 서둘렀다. 인정하기 싫지만, 소주성은 실패했다. 최저임금, 주52시간 같은 좌파초식을 쓸 때는 신중했어야 했다. 과속은 금물, 주변을 잘 살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소주성의 책사들, 홍장표·장하성·김현철을 청와대에서 내보낸 것도 그래서다. 이론뿐인 무공을 함부로 실전에 펼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상상의 무공을 펼치다 실패했다”고 이제 와서 말할 수는 없잖은가.

지난 2년 반, 내가 야심 차게 펼친 세 가지 핵심 무공은 모두 실패했다. 첫째, 소득격차해소공은 되레 격차를 키웠다. 소주성 실패를 만회하고자 무림 금고를 헐어 10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 꼭 잡으려던 강남 집값은 올 2분기까지 2년간 역대 최대(34%)로 올랐다. 부자만 더 부자가 됐다. 둘째, 적폐청산공은 또 어땠나. 부패한 우파 무림의 씨를 말리기는커녕 내로남불의 덫에 걸렸다. 편 가르기 초식이 되레 한국당을 부활시켰다. 셋째, 평화경제공은 이론뿐인 무공이었다. 도둑질한 부가 넘친다는 도람부(盜濫富) 미국 지존과 북무림의 수괴 으니는 손짓 한 번으로 평화경제공을 무력화했다. 펼칠 수 없는 상상의 무공, 평화경제공이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강호를 허황한 꿈에 빠뜨렸으며, 남무림 백성의 자존심에 상처만 줬다.

“그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한때 무림지존의 동료였으며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는 김병준 노사는 말한다.

“첫째,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 지금처럼 그냥 직진하는 것이다. 계속 우기면 하늘도 속는다. 강호를 속이고 사회주의 마공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둘째, 금선탈각(金蟬脫殼)-매미가 허물을 벗듯 벗어던지고 위기만 모면한다. 요즘 말로 ‘쇼’를 하는 것이다. 셋째, 환골탈태(換骨奪胎)-진짜로 껍질을 벗고 뼈를 바꾸는 것이다.”

병준노사는 그러나 “그는 세 번째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달리 그가 남자 그네공주라 불리겠나.

강호인의 눈은 매섭다. 그렇다. 후퇴는 없다. 평화경제공을 밀어붙이고 편 가르기, 내로남불 초식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최선이다. 이제 와서 내가 다른 무공, 자유시장경제공이나 반북무공, 규제철폐 초식을 익히고 펼친들 누가 알아주겠나. 되레 ‘쇼’를 한다며 더 공격할 것이다.

사실 편 가르기 초식이 왜 나쁜가. 지지자 1000만 명이면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편 가르기 초식은 쓰기도 쉽다. 손가락만 하나 튕기면 된다. 박그네, 재벌, 토착왜구, 일본국의 아베…. 내가 가리키기만 하면 적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적이 있어야 내 편이 똘똘 뭉친다. 여기에 내로남불 초식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슬쩍 “그네공주에 비하면 조국은 로멘스”라고 흘리거나 “도로 새누리당, 도로 그네공주로 돌아갈래”라고 되묻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면 후계도 마찬가지, 결론은 위선서생 조국이다. 내 사형 노무현이 14년 전 “떠내려가는 장수를 구하지 못하는 기분”이라며 내부 총질에 당한 경제부총리를 안타까워할 때, 나는 꼭 내 사람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었다. 조국을 내 손으로 자르며 비로소 사형의 심정을 알겠다.

그러나 내겐 조국이 여전히 필요하다. 눈을 씻고 봐도 그를 대신할 자가 없다. 차기 지존좌를 원순씨, 재명처사에게 넘겨줄 수는 없잖은가. 그렇다고 호남 출신의 무림총리로는 불감당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조국은 내년 총무림대회에 출전해 부산에서 살아 돌아와야 한다. 나를 위해, 조국을 위해. 설령 그 때문에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무너져도 개의치 않겠다. 나는 현 무림지존, 내 길을 가겠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