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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는 괜찮다, 문신은 가려라…일본의 이중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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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럭비 최강 뉴질랜드(검은색 유니폼)가 잉글랜드에 져 럭비 월드컵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대회는 뉴질랜드의 탈락 이변 외에도, 욱일기·태풍·문신 이슈로 잠잠할 새가 없다. [로이터=연합뉴스]

럭비 최강 뉴질랜드(검은색 유니폼)가 잉글랜드에 져 럭비 월드컵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대회는 뉴질랜드의 탈락 이변 외에도, 욱일기·태풍·문신 이슈로 잠잠할 새가 없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2019 일본 럭비 월드컵이 시끄럽다. 무엇보다 최강팀 탈락이라는 이변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욱일기·태풍·문신 등 다양한 이슈로 잠잠할 새가 없다.

럭비월드컵 참가 외국선수에 #“야쿠자 같다” 문신금지 주문 빈축 #‘후쿠시마 선전전’ 태풍에 날아가 #최강 뉴질랜드 결승 좌절 대이변

#이변

잉글랜드는 26일 일본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에서 우승 후보 0순위 뉴질랜드를 19-7로 꺾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최다 우승국(3회) 뉴질랜드의 패배는 대회 최대 이변이다. 뉴질랜드 헤럴드는 “하늘이 무너졌다! ‘올블랙스(뉴질랜드 럭비대표팀 애칭)’가 잉글랜드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경기 전까지도 상대 전적에서 잉글랜드를 압도한 뉴질랜드(33승1무7패)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잉글랜드는 기막힌 심리전으로 뉴질랜드를 무너뜨렸다. 뉴질랜드는 경기 전 하카(Haka, 전투에 나서는 마오리족 원주민 춤)를 선보인다. 눈을 희번덕 뜨고 혀를 내민 채 발을 쿵쿵 구르는 하카를 통해 상대의 기세를 꺾는다. 잉글랜드는 가만히 서서 하카를 지켜보던 관례를 깼고 ‘맞불’을 놨다. 주장 오웬페어웰(28)을 위시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하카를 추는 뉴질랜드 선수단을 포위하듯 V자로 에워쌌다. 일부 선수는 센터라인까지 접근했다. 예상 밖 대응에 뉴질랜드 선수들이 당황했다. 심판이 제지해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심리적으로 흔들린 뉴질랜드를 밀어붙여 경기 시작 1분36초 만에 선취점을 올렸다. 이후 한 차례도 리드를 내주지 않았다. 페어웰은 승리 후 BBC 인터뷰에서 “상대 계획대로 흘러가도록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일리 메일은 “하카가 잉글랜드에는 그 어떤 심리적 타격도 주지 못했다”고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잉글랜드는 2003년 호주 대회 이후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결승은 다음 달 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슈

일본 정부는 이번 대회와 내년 도쿄올림픽을 후쿠시마 지역의 안전성을 선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일본 열도를 강타한 태풍 탓에 차질을 빚었다.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뉴질랜드-이탈리아전, 잉글랜드-프랑스전(이상 12일), 나미비아-캐나다전(13일) 등 조별리그 3경기가 취소됐다. 럭비월드컵 사상 경기 취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회 일정상 경기 날짜를 바꾸기 어려워 세 경기는 대회 규정에 따라 0-0 무승부로 처리됐다. 일본-스코틀랜드전(13일)은 예정대로 열렸지만, 전날 훈련에서 양팀 선수들이 허벅지까지 물에 잠긴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캐나다 대표팀은 대회 도중 태풍 피해 복구 돕기에 나서기도 했다.

일본은 대회 개막 전부터 욱일기 선전에 열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에 따르면 이번 대회 패키지 티켓 디자인에 욱일기 문양이 교묘하게 사용됐고, 개막식부터 욱일기 문양 머리띠를 맨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지만,제지당하지 않았다. 도쿄 거리 곳곳에는 럭비 월드컵을 알리는 욱일기 문양 홍보물이 난무했다.

자신들은 욱일기로 점철된 럭비 월드컵을 개최한 일본이 참가 외국 선수단에게 문신 금지라는 황당한 주문을 해 빈축을 샀다. 일본은 “문신의 무차별적 노출이 야쿠자를 상징하고 혐오감을 준다”며 뉴질랜드와 사모아 선수단 등에 “훈련장 등지에서 문신을 노출하지 마라”고 요구했다. 사실 사모아인은 부족의 상징으로 문신을 한다. 사모아 선수단은 고심 끝에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에서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모아 주장 잭 램(32)은 “우리 문화에서 문신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일본 문화를 존중하는 뜻으로 가리겠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뉴질랜드에서 문신은 일상이다. 특히 마오리 등 부족 사회의 중요한 상징”이라며 “문신 금지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당혹스런 일”이라고 꼬집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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