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간 정동영 전 의장 출국 전 심경 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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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20일 독일에 머물고 있다. 그는 17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강연했다. 이 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란 주제 특강에서다. 강연에 참석한 교포들이 정치 관련 얘기를 물었지만 정 전 의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이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머물고 있다.

정 전 의장은 15일 출국에 앞서 측근과 만나 심경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가 뭔지, 왜 정치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5.31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던진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잠행하면서 그는 독일행을 결심했다. 비록 한 달여라지만 두 차례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당내 최대 계보의 수장이자 유력 대선 후보가 정치 현장을 떠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 전 의장 자신에게도 숨가쁘게 달려온 10년 정치인생 중 처음 맞는 휴식이다.

◆ "진공상태에서 진짜 나의 모습 찾을 것"=정 전 의장은 "(1996년 15대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10년은 끊임없는 고심과 분투의 과정이었다"며 "이제 휴식과 공백이 필요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무중력상태" "진공상태" "시간과 공간이 모두 100% 백지상태"라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표현했다. 대통령 선거 등 향후 행보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난 듯한 말도 했다. 그는 "국민의 눈으로 나를 보겠다. 국민이 더 이상 정동영이 필요 없다고 하면 아무리 내가 발버둥쳐도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내년 대선 국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조용히 정리정돈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미련이 남아서였을까. 그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여러 차례 회고했다. "2000년의 쇄신.정풍운동, 2002년의 국민경선, 2003년의 열린우리당 창당 모두 그것이 어떻게 귀결될지 100% 확신을 갖지 못하고 벌인 일이었다"며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나에게는 희망의 길이었고, 민심의 바다에 온몸을 던진 거였다"고 했다. 5.31 지방선거에 대해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 순 없어 당 의장에 나섰다. 마지막까지 최소한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준엄했다"고 털어놓았다.

◆ "나는 평범한 월급쟁이 출신"=그는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지도자들은 군인, 민주화 투사, 대통령의 딸 등 특별한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월급쟁이(기자) 출신의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며 "그래서 상식과 균형감각이 모든 생각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장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직을 함께 맡아 여러 부처의 의견조율을 경험하면서 균형과 상식의 가치를 또 한번 느꼈다고도 했다. 그는 "중요 고비 때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이 나의 정치적 원천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독일에서 경제.평화.문화의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깊이 생각해 볼 것"이라며 "귀국 일정이 예상보다 늦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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