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한 제재' 명분 쌓는 유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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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제법상으로 다른 나라 문제에 개입하려면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가장 좋은 방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거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 안보리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최초의 결의는 1950년 한국전 발발 직후 유엔의 개입 명분을 제공한 결의안이다. 당시 하나의 결의안으로 유엔군이 참전한 것이 아니라 유엔은 점점 강도를 높이면서 3개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6월 26일의 첫 결의안은 북한에 전투행위를 중단하고 38선 이북으로 후퇴하라는 요구였다. 북한은 이를 거부했고, 3일 뒤 안보리는 새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유엔의 요구를 거부한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해 유엔 회원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후 7월 7일에는 정식으로 유엔군을 결성하는 3차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처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태 추이 및 해당국의 준수 태도를 봐가면서 개입 정도를 격상시킨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북한 측의 태도에 따라 제재 등 국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새로운 결의안이 제출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다시 발사하거나, 평화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일본 등은 헌장 제7조에 입각한 새로운 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결의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위험한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한, 따라서 유엔의 권능을 무시한 행위에 대한 제재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전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에서 세 번의 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소련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소련은 중국의 유엔 대표권 문제로 유엔을 보이콧하고 있었으나 소련 대표는 뉴욕에 있었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침략행위에 동조할 수 없어서 안보리 결의 때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결의안의 후속 조치로 새로운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할 상황이 되면 중국과 소련은 찬성표는 던지지 못하더라도 기권이나 불참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번 결의안 내용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에는 국제법이 존재하지만 힘센 자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국내법과 달리 국제법은 권위 있는 법적 해석을 하고 법을 어겼을 경우 처벌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따라서 유엔 결의안은 강대국의 해석이 정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

1950년 10월 1일 유엔군이 38선에 도달해 북진을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소련 대표가 유엔에 복귀하는 바람에 여의치 않았다. 결국 서방 측은 총회에서 "유엔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 후 유엔군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모든 조치 중에는 북진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면서 북진을 시작했다. 이처럼 유엔 결의안은 강대국의 국가 이익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번 채택된 결의안에서 '결정했다'와 '요구했다'라는 식의 단어 차이가 아니라 북한이 얼마만큼 유엔의 의도에 협조하는가, 주변 국제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결의안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법과 도덕보다는 국익이 우선시되고 있다. 강대국은 국가이익과 충돌할 경우 유엔의 권위를 무시하고 국제개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마당에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강대국들이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쌓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북한이 오판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계동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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