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가 길에 생각할 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물속에 사는 개구리는 우물 안이 온 세상인줄 알겠지만 바깥세계에서 들여다 본 우물 속은 초라하고 모순 투 성이 일 수 있다. 우리가 처음 실시된 사실상의 추석 5일 연휴를 즐기느라 고속도로가 막히고 휴양지가 초만원을 이루면서 흥청망청「먹고 놀자 판」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선진부국들은 그런 우리를 어떤 시각으로 보았을까.
미시사주간지『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최근호에서 한국이 높은 임금상승과 파업 및 투자부진으로 해외수출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반면 고가의 외제사치품과 호화판 위락시설이 판을 치고, 젊은이들이 집보다는 먼저 승용차를 선호하고 있다는 등 전반적인 과소비풍조를 신랄하게 보도했다. 이 기사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로 유명했던 한국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며 잔업마저 기피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대로 내려오는 뿌리깊은 부자가 이제 겨우 밥술이나 넉넉히 먹게 된 졸부의 갑작스런 거들먹거림을 보듯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눈치를 노골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제적인 넓은 시야에서 바라본 한국경제의 현실이란 점에서 주목해야 할 우려와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오랫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고향 가족들과 단란한 모임을 갖는 것은 전래의 전통이고 미풍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정도가 점점 더 지나치지 않나 생각된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찬양 받던 우리 경제의 건설은 우리 근로자들의 피땀어린 희생과 노력이 그 기초가 됐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더러는 과도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그들이 기여한 우리 경제발전에 대한 공로에 비춰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인 평가라 하겠다.
그런데 이제 막 봉급이 좀 오르고 호주머니가 약간 두둑해졌다 해서 조업시간을 줄이고 잔업을 기피하자고 나서면서「놀자」쪽으로 기운다면 이것은 섣부른 자만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형편이 좀 좋아졌다고는 하나 이제 겨우 한사람 당 평균소득이 4천 달러 남짓에 불과하고 그것도 심한 불균형상태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사람 평균소득이 1만 달러인 다른 나라 국민의 눈으로 보면 이제 겨우 가난을 면한 정도인데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놀자고 든다면 정말 빈축을 살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은 없어도 승용차는 타야겠고, 기왕이면 작은 것보다는 크고 최신형을 타야겠다는 심사는 이제 갓 가난을 벗어난 소시민의 허욕과 허영에 다름 아니다.
추석연휴에 쏟아져 나온 승용차의 행렬로 전국의 도로망이 마비되다시피 된 사태는 지금의 과소비와 사치풍조가 초래한 우리 경제의 미래상을 시준 하는 듯 싶어 마음이 무겁다. 1만 달러를 벌어 4천 달러를 쓰는 국민을 흉내내려고 4천 달러 벌이를 몽땅 써 버린다면 그 결과는 파국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은 열심히 일해 부를 축적해야 할 처지에 있다. 우리사회에 아직도 엄존 하는 실업과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자기만의 이기주의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기업인이 투자의욕을 갖고 사업을 확장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확대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함께 잘 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본주의적 배분체제가 아니겠는가. 추석연휴를 즐기면서도 우리들 모두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