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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와 자신감 되살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올림픽 개막1주년을 맞게 될 지금, 왜 우리는 올림픽의 실종을 개탄하고 안타까워해야 하는가를 자문과 자성의 자세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을 치러 낼 수 있고 훌륭히 치렀다는 긍지와 자신감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올림픽의「유적」만이 쓸쓸히 남아 있게 된 까닭을 자책과 회한의 심정으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 리에 있어 올림픽이 갖는 일의 적 뜻은 화합과 수용의 정신이었다.
서울올림픽 개최결정이 강압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5공 최후의 「정치적 쇼」라는 비판적 관점을 도외시해서가 아니라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기왕에 결정된 세계적 축제의 마당을 국민적 단합으로 훌륭히 치러 내자는 데 국민적 합의를 도출했음을 우리는 최대의 결실로 꼽을 수 있었다.
20여 년에 걸친 권위주의시대의 종언과 새 민주사회를 향해 나가려는 6공화국의 시발이라는 시대적 분기점에서 두 시대를 수용하면서 새 질서를 향해 진군하는 화합의 한마당을 일궈 냈다는 데서 우리는 자부심과 앞날에의 도약에 자신감을 얻었었다.
그러나 그후 1년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질 않았다. 집단과 계층간의 반목은 서로 높은 장벽만을 쌓았고 사회 내부의 급격한 자기욕구 분출은 갈등과 분열의 격심한 대결구조로만 치달았다. 타협과 화해의 정신은 간 곳 없고 반목과 대결의 제로섬 투쟁만이 공장과 기업, 그리고 학교와 대학가에서 되풀이되었다.
지난 시대의 청산과 새 시대를 맞기 위한 개혁의 바쁜 발걸음을 보였어야 할 정치권은 실보다는 명분을 위한 청산이라는 입씨름의 쳇바퀴 속에서 세월을 보내며 당리당략에 발묶인 채 개혁을 향한 발걸음은 과거 속에 묶여 지난 한해를 탕진했다.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올림픽 캐치프레이즈 속에서 기대했던 우리의 경제성장목표는 3년만에 무역적자라는 참담한 마이너스성장으로 내려가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각분야에서 노출된 반목과 대결의 끝없는 투쟁은 극좌적 모험주의자들을 탄생시키면서 무모한 통일노선을 내걸고 밀입북파동을 불러일으키면서 급기야 사회 전체를 5공 회귀성 공안정국으로 몰아가게끔 만들었다.
화해와 타협의 정신을 무시한 노사갈등과 학교·학원의 지칠 줄 모르는 격렬한 시위는 사제간의 대결과 분열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젠 서울올림픽의 추억만으로 남아 있을 단합된 시민의식과 수준 높은 질서의식은 간 곳 없고 분열과 대결, 무질서와 과소비, 폭력과 범죄가 범람하는 악의 온상으로 퇴보하고 있다.
지난날의 즐거웠던 축제의 기억으로 오늘과 앞날을 살아갈 수는 없다. 지난날 반짝했던 한때의 영광으로 오늘의 삶을 치유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낡은 질서와 새 질서의 갈림길에서 지난 올림픽 때 가슴 뿌듯이 느꼈던 새 질서로 향한 단합된 개혁의지, 화해와 타협, 시민정신과 질서의식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된다.
그와 같은 결의가 사회 저변으로부터 다시 솟아나 우리 스스로의 자신감에 확신을 얻지 못한다면 올림픽이 마련해 준 화합 속의 개혁과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뜻에서 올림픽 1주년에 우리가 서 있는 분기점의 역사적 의미를 우리 모두가 깊이 생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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