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금식판 흙식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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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보육교사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선생님 더 먹고 싶어요”란 아이들 말에 “미안해 이제 없어”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사과 2개를 저며 15명에게 나눠 주면서 아이들에게 “간식 먹자”라 말하기 민망하다. 아이는 항상 배가 고프다. 어린이집에서 점심과 오전·오후 간식까지 먹는데도 집에 오면 늘 허겁지겁 먹을 것을 찾는다. 부모는 “애가 왜 이리 식탐이 늘었을까” 걱정한다. 어려웠던 옛 시절 얘기가 아니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1745원, 어린이집의 하루 급·간식비다. 이 돈으로 한 아이가 간식 2회와 급식 1회를 먹는다. 2009년 이후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소비자물가지수가 20% 넘게 오른걸 감안하면 아이들 밥값은 매년 깎인 셈이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전국 300여 공공기관 직장어린이집 급식비를 조사했더니 평균 3439원이었다. 서울시청 직장어린이집은 6391원으로 최고였고, 보육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직장어린이집은 3862원이었다.

지역별로도 달랐다. 부족한 밥값을 지자체가 지원하는데 그 금액이 다 달라서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는 관내 직장어린이집에 2600원을 추가 지원한다. 반면 경기 용인, 경북 청도, 고령군, 부산 서구 등 75개(32.1%) 지자체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 영유아기부터 부모 직업, 사는 곳에 따라 금식판, 흙식판이 갈린다.

11년간 세 번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누구도 아이들의 끼니에 눈길 주지 않았다. 쌀밥 한 주먹, 손톱만 한 두부 조각이 든 멀건 된장국, 얇게 썬 계란말이 두 쪽, 볶은 애호박 두 쪽, 깍두기 조금. 어른들이 정쟁에 골몰하는 새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부실한 식판을 받아든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