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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위성락의 한반도평화워치

강제 징용 문제, 새 해법 찾아 양자 협의로 풀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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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일 관계 선순환 로드맵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다. 문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서 비롯되었다. 대법원은 기존 정부 입장과 달리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2012년 판결이 시작이었고, 2018년 확정판결로 분쟁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양자 협의에 새 해법은 필수 #1+1 방안은 수정이 불가피 #정부가 해법 내기 어려우면 #민간에 의뢰하는 것도 방법

일본은 판결을 따를 경우 1965년 맺은 한·일 기본조약 체제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여 극력 반발하였다. 일본은 문제가 종결되었다는 것이 그간 양국의 합의였으니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에 피해가 없도록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2012년 이래 이 문제에 대한 한국 내 분위기는 소극적이었다. 국민감정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소극 대응 심리가 저변에 있다 보니,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기보다는 우리 편의대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응 방안이 도출되곤 하였다.

처음부터 한국은 판결이 준 충격을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확정판결 직후 일본이 65년 협정을 근거로 양자 협의를 요청하자, 한국은 대법원 판결을 정부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서 불응하였다. 그러자 일본은 협정상 양자 협의의 다음 단계인 중재위원회를 요구하였다. 한국은 불응하였다. 8개월이 지나갔다.

일본에서는 징용 판결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극적으로 변했다. 이제 많은 일본인은 한국이 우호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과거 여느 분쟁 때 보던 일본 내 반응 정도로 치부되었다.

징용 문제 해법 찾아야 악순환 벗어나

이런 환경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열리게 된다. 일본은 징용 관련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 한, 한·일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은 G20 직전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하는 1+1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국은 이 안을 일본이 수용하면 양자 협의를 하겠다고 하였다. 기업의 출연을 정부 간에 합의하자는 것이므로 엄밀히 자발적 출연은 아니었다. 일본은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는 방안이라고 여겨 거부하고 수출 규제를 앞당겼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의 격한 반응을 촉발하였다. 맞대응이 이루어졌다. 한·일 간에 가용한 카드를 비교해 보면 한국에 불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현실적인 논점은 국민감정 앞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맞대응은 일본의 추가 조치를 유발하였다. 여기서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을 결정한다. 이 결정은 일본을 겨냥하고 있으나, 한·미·일 안보 협력에 이해를 가진 미국을 중재에 끌어들이려는 계산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중재에 미온적인 미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미지수다. 일단 미국은 실망을 표하면서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중재 기미는 아직 없다. 만일 미국이 나선다 해도 중재 방향이 우리 뜻대로 될지 불확실하다. 우리가 선호하는 방안은 일본은 수출 규제를 철회하고 우리는 지소미아를 복원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에 반대하고, 징용 판결에 대한 해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나올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방안을 찾다 보면, 65년 협정에 쓰여 있는 중재위원회로 돌아가는 카드를 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이를 권유하면 이번에는 한국이 못 받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소미아 중단이 촉발한 미국발 후폭풍에 대처해야 하는 한편, 일본의 추가 조치에도 대비해야 할 참이다. 조만간 압류된 일본 자산의 매각이 다가온다. 일본은 강력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도 대응해야 한다. 카드가 충분치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더 가깝다는 현실 인정해야

이상에서 보듯 한국이 일본과 계속 치고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동맹과 한·일 협력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지탱하는 주요 기반이기도 하다. 그 기반을 손상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러니 악순환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선순환의 출구 로드맵을 그리는 데 참고가 될 몇 가지 관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상대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우리의 능력 또한 냉정하게 인식하는 기초 위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출발점이다. 일본은 65년 협정에서 양보할 의사가 거의 없다. 갈 데까지 가겠다는 식이다. 불행히도 미국은 일본에 가깝다.

둘째, 상황을 타개하려면 징용 판결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출구를 찾을 수 없다. 1+1 제안은 일본의 거부로 더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

셋째, 그렇다고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고려할 수는 없다. 지금은 그 단계가 아니다. 양자 협의로 해결을 모색할 단계다. 지금껏 양국은 제대로 양자 협의를 하지 못했다. 한국이 양자 협의에 불응하니 일본은 중재위원회 방안으로 넘어갔지만, 그렇다고 양자 협의가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논의할 만한 해법을 내놓고 진지한 양자 협의를 해야 한다. 관건은 어떤 해법이냐다.

넷째, 불가피하게도 논의할 만한 해법은 일본 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방안, 65년 협정에 대한 존중 등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논의가 시작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 정부의 사과가 들어가야 한다.

다섯째, 이런 점에서 우리의 1+1 제안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1+1 제안에 한국 정부의 출연을 추가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는 취지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일본은 이 방안도 거부한다. 여전히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간다는 점에서 1+1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 제안을 하고 일본은 또 거부하게 되는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작동 가능한 수정안은 1+1 제안 중 일본 기업의 출연을 진정한 자발적 의사로 돌리는 것이다. 출연 문호를 열어 놓고 자유의사에 맡길 것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향적인 용의를 밝힘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일본 정부에게는 사과의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일본 기업이 부담하되 한국 측이 일단 보전해 주는 방안,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만 일본 기업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한국 측이 부담하는 방안 등 수많은 변형을 생각할 수 있다.

촛불 민심 따라 대일 외교도 선진화해야

여섯째, 그런데 수정안을 정부가 바로 제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간의 입장도 있고, 대일 감정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대안은 필자가 이미 제안한 바와 같이 초당적 민간 현인(賢人)회의를 구성하여 해법을 내게 하고, 정부는 이를 존중하여 양자 협의를 하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과 5당 대표는 초당적 대처에 합의한 바 있다.

일곱째, 추가적 상황 악화는 막아야 한다. 양자 협의가 시작되거나 현인 회의에 해법이 위촉되면, 일본의 추가 행동은 억제될 것이다. 문제는 국내의 일본 자산 매각인데, 출구를 찾는 동안은 추가 행동을 자제하도록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제3자의 매각 대금 공탁 방안도 고려하는 게 좋겠다.

요컨대, 출구를 찾으려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랫동안 대일 외교가 붙잡혀 있던 과도한 감정, 편의적 인식, 소극적 대응의 틀을 벗어야 한다. 촛불 민심을 받아서 들어온 정부가 이 작업을 시작해주기를 기대한다. 촛불 민심은 국정 전반에 걸친 선진화를 주문한 것이고, 대일 외교도 예외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상황의 추가 악화를 막고 징용 판결과 일본의 대응 조치,그리고 지소미아 문제까지 일괄 해결하는 선순환의 출구 찾기가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