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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이대로 좋은가|목청높이는 사람이 이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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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초보운전자인 오모씨(38·K대강사)는 요즘에서야 「운전하는 사람치고 입이 걸지않은 사람없다」는 이유를 조금은 알것같아 씁쓰레한 기분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며칠전 시내 N백화점 옥의주차장에서의 일이다.
오씨가 빈곳을 찾아가던 중 때마침 후진으로 빠져나오려던 차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는순간 둔탁한 충돌음이 뒤에서 들렸다. 뒤차에서 뛰쳐나온 30대초반의 운전자는 다짜고짜 『운전을 어떻게 배웠어』라며 반말에 삿대질을 해가며 오씨를 몰아세웠다. 뭐라고 변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오씨는 상대방의 선제공격앞에 꼼짝없이 모든잘못을 뒤집어쓰고 아들앞에서 멱살을 잡히는 봉변까지 당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방은「사고나면 목소리 큰게 장땡」이라는 경험철칙에 숙련된지 오래지만 오씨는 아직 순진한 초보운전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오씨는 초보운전자로서 갖가지 「풍상」을 겪다보니 사고시 「우선 상대의 기를 꺾고 유리한 고지에 서고 보자」는 보편화된 풍조속에 자신도 별수없이 길들여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운전하다보면 성격까지 변한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서울묵동 D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5월 아파트입구 구유지에 들어서는 청소년 독서실 건립을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 이유는 아파트단지내 독서실주변의 우범지대화.
그러나 3백여가구증 그야말로 기를 쓰고 건극 반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지의 우범지대화라는 반대이유는 표면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3층짜리 독서실 건립예정지 바로 뒤에 사는 일부 주민들의 일조권과 사생활침해 우려가 주된 이유여서 직접적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 다른 동 주민들에게는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
그런데도 구청에 전체주민들의 의사로 진정서와 건립경위에 대한 문의서가 접수될 수 있었던 것은 일부 적극적인 주동자들의 목소리가 전체분위기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구청이 2억7천만원을 들여 추진하려 했던 독서실건립계획은 백지화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이에대해 한 구청관계자는『장차 2백평 남깃한 문제의 땅이 민간인에게 불하될 경우 최고5층짜리 건물까지 늘어설 수도 있어 더 큰 민원이 예상되는데도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 때문에 주민들은 들어온 밥상을 걷어찬 꼴』이라며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소극성」을 안쓰러워했다.
이처럼 「우기면 통한다」는 식으로 과격론자들의 일방통행은 자칫 공존의 윤리나 공익을 저버리가 쉽다. 뿐만아니라 과격의 악순환을 자초한다. 지난 5월29일 두 근로자의 분신자살로 전면 조업이 중단된 대우조선이 그로부터 한달 뒤 노사협상이 타결되기까지 겪은 지난한 갈등은 『과연 자기주장은 어디까기 옳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누구나에게 던져주었다.
1조원이 넘는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에서 52.9%의 기본급인상을 주장해온 강경세력의 반발로 협상대표들의 임금인상 합의안이 대의원회의에서 뒤집히고 만것은 과격논리가 득세하는 세태를 잘 반영해주는 것이었다.
노사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대의원 회의내 강경반대파는 전체54명중 22명선인 것으로 알러졌으나 표결결과 6명이 이에 가세, 합의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이에대해 주변에서는 이날 표결이 기립투표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온건론자들의 입지가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풀이 했다.
공존공영보다 선명성이 우월적 가치를 가지는 노조의 일반적 분위기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기립투표방식으로는 온건타협을 내세우는 세력의 위상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다수결원칙과 타협정신의존중은 비록 공리주의자들만의 주장은 아니거니와 이는 생활원리로서의 민주주의가 논의될때마다 어김없이 제기되어온 공동체윤리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대의명분이나 실리에만 짐착한 나머지 절차나 기타 다양한 의사를 무시하는 과격성이 통용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온건의사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예가 많다. 어떠한 조직이나 또는 회의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원화사회에서 존중되는 「가치관의 조화」가 무색할 정도다.
이같은 과격한 문제접근방식은 때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아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반민주적 폭력성을 드러내기가 쉽다는 것은 대학가 시위현장에서 흔히 볼수 있다.
지난 6월22일 서울대 학생회관 옆 광장. 「화염병은 망국범」이란 플래카드 아래 일부종교단체소속 학생 1백여명은 거듭된 집회와 시위로 훼손된 광장주변의 잔디복원작업을 한 뒤 폭력시위반대집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들의 집회는 총학생회 간부등 학생 1천여명이 몰려들어 플래카드·피킷등을 빼앗아 불태우고 부숴버리는 바람에 20분만에 중단됐다. 학생회측 학생들은『집회참석자들이 당국의 사주를 받았다』며 공개사과를 요구하면서 학생회관 라운지로 끌고가는 도중 주먹과 발길질마저 서슴지 않았다.
폭력시위와 화염병투척이 대학의 진정한 용기와 양심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개탄하던 집회학생들은 끝내 목소리 큰 학생들의 위력아래 무릎꿇고 말았던 것이다.
「죽을수는 있어도 질수는 없다」. 각종 분규현장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구호다. 온건한 타협론이 깃들 여지가 없는 이같은 살풍경의·집단논리는 비장하리 만큼 과격일변도다.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좀더 과격하고 적극적인 말이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과걱파가 득세한 것은 엄연한 진리임을 볼때 이른바 과걱논리 앞엔 수적우열을 따진다든가 합리적 절차나 수단을 기대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의미하다는게 조직이론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목적지향적인 과격론자들은 항상 공동선을 표방하지만 밀어붙이기식의 성취에만 급급하다. 급진일변도가 곧 자신의 존재방식인양 기정화하고, 자기주강에 투철한 것만이 지사나 절사의 길로 착각함으로써 「타협과 양보는 바로 패배」라는 인식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진덕규교수(이대·정치학)는 『요즘 사회분위기는 이성이 극도로 위축돼 있으며 교조적 급진논리가 무성하다』고 지적하고 『모두가 들떠있는 이러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지도자 모두가 합리적 이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안남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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