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중거리 미사일 충돌 가시화, 왕이 고노 만나 "배치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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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아시아 배치 움직임을 둘러싼 미·중 충돌이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의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0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의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아시아 배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왕 부장은 같은 날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우회적으로 중거리미사일 배치에 대한 우려 입장을 알렸다.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0일 방중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0일 방중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이 국무위원은 “중국은 미국이 이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시도에 대해 반대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왕이 국무위원의 공개적인 경고는 중국 외교부가 20일 밤 홈페이지에 올린 ‘왕이-고노 회담’과 중국 관영 통신사인 신화사(新華社) 보도에 모두 나와 있다. 중국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아시아 배치 움직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신화사에 따르면 왕이 국무위원은 고노 외무상에게 “중·일 간 민감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하는 한편 “쌍방이 리스크 방지 노력을 강화해 모순과 이견을 건설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이 국무위원은 특히 “다음 단계의 고위층 정치 교류를 위해 필요한 조건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해 일본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에 동조할 경우 내년 봄으로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을 시사했다.
중국은 지난 3일 마크 에퍼트 미 국방장관이 호주 방문 중 중거리 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를 거론한 이후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 중거리 핵전력(INF) 폐기조약을 파기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배치를 염두에 뒀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중국이 보유한 둥펑(東風)-21이나 둥펑-26 등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이 오키나와는 물론 미국령 괌의 미군 기지까지 타격 가능할 정도로 중국 군사력이 커지면서 이 같은 중국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INF 파기에 이어 지상발사 중거리 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그리고 그 후보지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많다.
왕이 국무위원의 일본에 대한 사실상 경고는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왕 국무위원이 고노 외무상에 이어 가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반대 입장을 표명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방중한 고노에게 #“중국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반대” 천명 #강경화 장관과 한·중 회담서도 우회적으로 입장 전달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20일 한ㆍ중 외교장관회담 관련 보도자료에는 중거리 미사일 관련 언급이 없었다. 한국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도 마찬가지다. 단 외교 소식통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왕 부장 간 회담에서도 중거리 미사일 문제가 언급됐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왕 부장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조약 종료가 역내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중국의 입장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타깃으로 직접적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중거리 미사일이 배치될 경우 역내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관측된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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