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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 '대란' … 둔내터널 통과에만 4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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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5일 내린 폭우로 영동고속도로 속사 일부 구간이 끊어지자 휴가철에 영동지역을 찾은 피서객 차량들이 대관령 부근 상행선 도로 위에서 발이 묶여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N-POOL강원일보=송성진 기자

"강원도 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16일 오전 10시, 집중호우가 연이틀 쏟아진 강원도 평창군 면온리 영동고속도로 면온IC. 강릉행 버스를 내려 서울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이영애(47.사진)씨는 길바닥에서 허비한 30시간이 끔찍한 듯 진저리를 쳤다. 버스 안에서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운 데다 식사까지 제대로 챙기지 못한 이씨는 파김치가 됐다.

인천시 부계동에 사는 이씨의 '영동고속도로 악몽'은 15일 오전 9시 시작됐다. 제헌절 연휴를 맞아 부천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까지만 해도 모처럼만에 남편과의 호젓한 시간을 기대하며 가슴이 부풀었다. 강원도 양양의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이씨의 남편은 16일이 마흔아홉 번째 생일이다.

주말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버스 기사는 안양~수원~신갈 코스 대신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폭우를 뚫고 강릉을 55㎞ 앞둔 장평IC 부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하지만 여기서부터 차량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평창휴게소 부근의 토사 유출로 이미 낮 12시20분부터 상.하행선이 모두 통제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씨가 탄 버스는 기름이 떨어졌다. 차를 되돌려 60㎞를 달려 원주에서 주유한 버스가 다시 강릉을 향해 고속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3㎞ 남짓한 둔내터널을 지나는 데 자그마치 4시간이 걸렸다.

"체증도 체증이지만 어디서, 무슨 문제 때문에 막히고 언제쯤 갈 수 있을지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답답하더라고요."

게다가 면온IC 일대는 전날 오후부터 무선통신사의 기지국이 침수돼 휴대전화가 불통된 데다 전기까지 끊겼다. "어제 오후 6시 통화를 마지막으로 남편과 휴대전화가 두절됐어요. 소식이 끊긴 남편은 도로공사.경찰서 등으로 수소문하느라 지쳤더라고요."

이씨는 "좁은 버스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힘들었지만 전화 연락도 끊기고, 칠흑 같은 어둠이 감옥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씨가 탄 버스 승객들은 둔내터널 진입 전 소사휴게소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화장실을 이용해 다행이었다. 둔내터널 안에서는 용변을 참지 못하고 남들이 보건 말건 터널 중간 비상주차대에서 급한 볼일을 해결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마침내 이씨는 오전 9시 남편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버스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자 버스 기사는 서울 방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승객들을 반대편에 있는 같은 회사 버스에 옮겨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릉에 연고지가 있는 승객들은 내리지도 못하고 좌석에 계속 앉아 있었다.

"늦게라도 복구가 돼서 양양에 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만 허비하고 이렇게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다니…."

이씨는 한숨과 함께 눈물도 내비쳤다. 이씨가 탄 버스는 성남.안양을 거쳐 오후 3시30분에야 이씨를 부천에 내려주었다.

평창=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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