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턱밑까지 황톳물 주민들 대피 준비 북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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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4시 남한강과 1㎞ 정도 떨어진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리. 이틀 동안 쏟아진 폭우로 남한강의 수위가 계속 올라 홍수경보가 발령되자 이 일대 3만여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주민 김윤수(45)씨는 "설마 했는데 홍수경보까지 발령되고 보니 '잘못하다간 큰일나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밀려온다"며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재도구를 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시간 뒤 여주군청 재해대책상황실. 군청 공무원은 전화통을 붙잡고 애원했다. "여주군 여주읍 일대가 모두 침수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여주대교의 수위가 계속해 올라가자 충주댐에 방류량을 조절해 줄 것을 몇 번이나 거듭해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공무원은 끝내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수자원공사 충주권관리단이 강원 남부와 충북 북부지역 강우량이 많아 방류량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주댐 측은 오후 4시쯤부터 상류 충주댐의 방류량을 초당 7000t으로 늘린 데 이어 충주댐 수위가 높아지자 16일 자정까지 방류량을 두 배에 가까운 초당 1만700t으로 늘리겠다고 여주군에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여주군 남한강 일대는 침수 가능성이 높다. 이는 1990년 9월 11일 초당 최대 유입량 2만2164t을 기록하면서 다음날 1만4000t을 방류한 이후 두 번째로 많은 방류량이다. 당시 여주대교 수위는 10.17m를 기록했다. 여주군은 이날 밤 남한강 유역의 범람에 대비해 긴급 재해대책 시행에 나섰다. 우선 오후 6시30분 여주대교가 위험수위인 9.5m를 넘어 9.59m에 이르자 37번 국도 여주대교의 통행을 차단했다. 물이 다리의 상판에 닿을 정도로 높아진 데 따른 조치다. 이어 여주읍 하리 저지대 주민을 대피하도록 안내했다. 한편 여주읍 일대 주민에게도 대피를 준비하도록 재해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여주군은 여주대교 수위가 둑 높이(11m)를 90㎝ 남겨둔 10.1m까지 상승할 경우 여주읍 상리.하리.창리.홍문리 등 4개 리 전 주민 3만5000여 명을 여주대학.여주초교.여주중.여주군체육관 등 9곳으로 긴급 대피시키기로 하고 대피소 점검에 나섰다.

또 오후 8시30분부터 교통경찰과 모범운전자회 회원 등 10여 명이 양평군으로 이어지는 여주대교 입구인 여주읍 상리 네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을 우회시켰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여주대교를 건너려던 차량들이 여주읍내 시가지로 우회하느라 일대 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또 군민들은 시시각각 높아가는 남한강 수위를 확인하기 위해 여주대교 주변에 나오는 바람에 다리 주변이 북새통을 이뤘다. 주부 이순오(45.여주군 여주읍 상리)씨는 "오후 들면서 여주 지역의 비가 멎었는데 도시가 침수 위기에 놓이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여주=전익진.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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