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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기의 소통카페

이번에는 죽지 않고 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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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신춘문예 당선 소설 ‘매일 죽는 사람’의 주인공처럼 나는 매번 죽으러 갔다. 나는 너무 많이 패배하였고, 칭찬을 받은 적은 너무 없다. 나를 열어 놓고는 진흙탕 싸움만 반복하니 국민의 질타 소리는 높고, 나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를 이리 천덕꾸러기로 만드니 한때 동양 최대의 의사당이라고 자찬한 건물이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2006년 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으로 태어날 때 나는 이렇지 않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의 구중궁궐 같은 내심은 모르지만 국민은 나를 박수로 맞았다. 신생아치고는 이미 거인, 타석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홈런이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장관 등 최고위 공직자의 업무 능력과 인성적 자질에 대해 국회의 검증이나 동의를 거치게 함으로써 대통령을 견제하고 삼권 분립의 헌법정신을 지키게 하는 법이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 9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포함하는 개각을 두고 여야의 난타전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의 개혁 정책을 일관성 있고 안정적으로 추진하는데 역점”을 두고 “도덕성을 기본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를 우선 고려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신 독재국가의 완성을 위한 검찰의 도구화”라며 “조 전 수석의 임명 강행은 야당과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바른미래당은 “국회와 싸워보자는 얘기”라며 ‘몽니·회전문 인사’라고 날을 세운다. 반면에 여당 원내대표는 “조 교수의 내정은 사법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나타낸 것” 이며 “특정 후보에 대한 집중 비난 보다 국민의 시각이 청문회 진행의 으뜸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소통카페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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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각발표 다음 날 주요 언론의 사설은 모두 국정쇄신에는 미흡하다는 점에 일치한다. 그러나 ‘실무형 개편’으로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 해온 이들을 지명함으로써 안정감과 중량감을 갖춘 무난한 인선(한겨레), 경제위기와 한·일 갈등, 미·중 패권전쟁, 북핵 교착 등 나라 안팎 복합 위기에 대한 우려는 어느 때보다 큰데 대통령은 ‘누가 뭐라든 내 맘대로 인선’(조선일보) 이라고 해 대조적이다.

‘그냥 임명할 터인데 열 필요 없다’와 ‘추석에는 깔끔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쳐야 한다’ 는 여야의 주장은 모두 나란 존재에 대한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이고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독선이다. 늘 그랬듯이 나는 출발하기도 전에 극단의 찬반으로 만신창이 상태지만  인사청문회가 필요한 제도임을 이번에는 보여주기를 원한다. 나의 태생의 이유를 제대로 실행하여 나를 살려 놓기 바란다.

첫째, 과거를 검증하되 미래도 논쟁하라. 후보자의 과거 기록·행적·발언과 함께 업무능력·리더십, 장관으로서 가치관 등을 놓고 창과 방패로 격돌하기 바란다. 둘째, 모욕· 상스런 말·조롱·욕설·폭언, 부적절한 행동으로 청문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위를 멈춰라. 셋째, 여당은 무조건 찬성하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고정 역할을 탈피하라. 넷째, 청문회는 국민의 알 권리, 국민의 감시와 심판,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제도임을 기억하라.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