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최대 이슈는 “폭언 못 참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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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담은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뒤 하루 평균 16.5건의 진정이 고용노동부에 쏟아졌다. “폭언을 못 참겠다”는 진정이 가장 많았다.

금지법 한달, 379건 중 152건 #50인 미만 사업장 진정이 절반 #부하 직원, 상사 ‘왕따’도 괴롭힘

고용부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6일까지 접수한 괴롭힘 관련 진정은 379건이었다. 폭언 관련 진정이 152건(40.1%), 부당 업무 지시나 부당 인사(28.2%), 험담과 따돌림(11.9%) 순이었다. 폭행(1.3%)에 이르는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은 적었다.

직장 내 괴롭힘 유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직장 내 괴롭힘 유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의 진정이 42%(159건)로 가장 많았다. “체계적인 인사시스템 없이 즉흥적인 업무처리가 많기 때문”으로 고용부는 해석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에서 가장 많았지만(22.4%) 취업자 비중이 4.8%에 불과한 사업서비스업(14%)의 진정 비율이 높았다. 건물 관리, 청소, 경비·경호, 여행사 등에서 괴롭힘이 상대적으로 잦다는 뜻이다.

서울(119건)과 경기(96건)의 진정 건수가 전체의 56.7%였다. 전남·제주·세종에선 한 건도 접수되지 않는 등 나머지 지역은 적었다.

법 시행 이후 정부가 매뉴얼까지 냈지만 산업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박정연 노무사(노무법인 마로 대표)는 “괴롭힘은 조직문화 차원의 문제인데, 업종과 회사 분위기가 다른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규율하는 데서 여러 문제가 불거진다”며 “향후 행정해석이나 판례로 정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Q&A=산업현장에서 아리송해 하는 괴롭힘 방지 현안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괴롭힘 피해자가 부서이동과 같은 격리 조치만 해달라고 한다. 이럴 경우 조사없이 종결해도 되나.
“법과 고용부가 만든 매뉴얼이 다르다. 근로기준법은 신고 접수나 인지한 경우 지체없이 조사토록 조사 의무를 부여했다. 반면 정부의 매뉴얼에는 격리 또는 합의종결을 원하면 조사를 생략하거나 약식조사로 종결할 수 있게 했다. 법과 배치된다. 이 경우 행위의 수위나 재발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조사와 징계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추후 법적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상응한 조처를 하는 것이 좋다.”
부하 직원의 업무 미이행 등으로 상사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도 괴롭힘일까.
“부하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생긴 상사의 스트레스는 노동법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가 부하 직원이 가진 전문지식이나 조직 내의 구성원 속성상 부하를 포함한 일부 직원끼리 집단을 이뤄 ‘관계상 우위’에 있는 경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위 ‘왕따’나 ‘무시’ 같은 내부 관계의 우위가 작용한다면 상사에 대한 괴롭힘도 인정될 수 있다.”
법 시행 이전에 벌어진 괴롭힘을 문제 삼는다. 소급 적용되는가.
“노동법의 시효는 대체로 3년이다. 그래서 3년 전의 사안을 문제 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괴롭힘 조항은 시행일 이후부터 적용된다.”
사용자가 괴롭힌 행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사용자를 제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괴롭힘 방지법의 기본 취지는 조직문화 개선이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방관만 해서는 곤란하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공정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보호 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어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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