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는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대화 거부' 日 붙잡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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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을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업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을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업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대한 일본 측 설명 요청에 대해서 자세한 사항은 행정예고안을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예고 이전에 일본 측에 사전 통보하고 주요 내용과 고시개정 절차에 대한 설명도 했다.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면 협의든 설명이든 일본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앞서 14일 일본을 화이트 국가(수출우대국)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행정예고한 데 대한 ‘부연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행정예고 이전에도 일본에 사전 통보하고 주요 내용과 고시 개정 절차를 충분히 설명했다”며 “일본 경제산업성이 다시 e-메일로 제도를 바꾼 구체적 이유와 근거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와 실무 협의 의지를 재차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성 장관은 개정안 내용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대화를 원하면 언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15일 “화이트 국가 배제 조치에 대해 한국 측에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한국과) 협의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대화를 거부하는 일본을 붙잡는 모양새다.

‘저자세’로 비치는 데 불구하고 정부가 일본과 협상에 매달리는 건 쓸만한 맞대응 카드가 없어서다. 심지어 화이트국 배제 조치도 일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미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올 상반기 기준 일본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한국산 비중이 4.1%에 불과한 데다 그마저도 대체품을 마련하기 쉽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부품ㆍ소재 산업을 육성해 대일 의존도를 낮추고,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대책으로 당장의 경제적 타격을 해결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대일 무역적자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일본보다 한국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며 “맞대응보다 협의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악에 대비한 ‘명분 쌓기’ 성격도 있다. 정부가 현재까지 맞대응 카드로 공식화한 건 WTO 제소다. 제소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일본이) 정치 이슈를 근거로 수출을 규제했다”는 논리와 “절차적 정당성(사전 통보 없이 조치 단행)을 어겼다”는 것이다.

일본 측으로부터 같은 논리로 그대로 역공(逆攻)당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면 수출 규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사전 통보를 하면서도 언제든 양자 협의에 응할 수 있다는 식의 협상 여지를 두는 등 ‘절차’를 강조한 건 WTO 제소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설명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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