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떨어진 BTS교통카드 주워간 남성, '점유이탈물 횡령' 유죄

중앙일보

입력

지난1월15일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승객이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뉴스1]

지난1월15일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승객이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뉴스1]

길에 떨어진 교통카드를 주워가면 범죄일까?

김모(56)씨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와 마포구 홍익대 주변을 다니며 교통카드 5장을 주웠다. 5장 가운데 3장에는 돈도 충전돼 있었다. 특히 이 가운데는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레드벨벳의 사진이 붙어있는 카드도 있었다.

얼마 뒤 수사기관에 적발된 김씨는 점유이탈물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지난 3월 마포구에서 3차례 가방과 지갑을 훔친 혐의(절도)는 인정했지만, 교통카드는 그저 주웠을 뿐이라며 반발했다. 억울함을 호소한 김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주인이 버렸다고 보기 어려워" 

재판의 쟁점은 길에 떨어진 교통카드가 '주인없는 물건'인가였다.

점유이탈물 횡령죄는 주인이 소유권은 여전히 갖고 있지만 분실 등을 이유로 점유권을 상실한 물건을 가져갔을 때 성립한다.
김씨는 길에 버려진 교통카드는 이미 주인이 소유권을 상실한 물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배심원단 7명 가운데 4명은 교통카드가 버려진 물건이 아닌 '점유이탈물'이라 봤다.
재판부도 배심원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려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주운 교통카드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교통카드 중에는 방탄소년단과 레드벨벳의 멤버 사진이 담긴 것도 있다"며 "단순히 교통카드의 용도를 넘어 소장품으로 기능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교통카드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지 않았던 점을 들어 소유자들이 물건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의지 변호사(법무법인 서담)는 "일반적으로 볼 때 교통카드는 계속해서 충전해서 쓰는 물건인데다 돈을 충전해뒀다면 잃어버렸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라면서 "값이 나가는 방탄소년단 교통카드라는 점에서도 버렸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주인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점도 고려" 

재판부는 교통카드의 주인을 찾아주려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교통카드를 줍고도 경찰에 분실물 신고를 하는 등 주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비난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밝혔다.

김의지 변호사는 "교통카드는 소유자가 어딘가에 등록을 한 뒤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돌려줄 방법이 있다"면서 "주인을 찾기 어려운 다른 물건과는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 동안 5장의 카드를 주웠다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계리 변호사(법무법인 서인)는 "5번이나 교통카드를 습득했다는 건 상습이라고 볼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비록 주운 물건이라고 하지만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 아닌지 충분히 의심할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절도 등의 혐의로 3번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3번 이상 절도로 유죄를 선고받았을 경우 상습절도로 판단해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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