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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낭만녀 "꿈이면 어때, 백마 탄 왕자님 … 역시 순정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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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취향이 엇갈리는 경우가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만 만화 고르기는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주 '책캉스'는 추리.미스터리 소설, 여행 에세이에 이어 세번째로 '만화남녀'를 준비했습니다. 남녀 칼럼니스트 두 명이 남녀의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해 휴가철 읽을 만한 만화를 추천했습니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반짝반짝하는 웹툰(인터넷 연재만화) 중 최근 책으로 출간된 작품들도 챙겨봤습니다. 국내 작품과 일본 작품의 비율을 가급적 맞추려고 애썼습니다.

강추1 ▶ 사랑해(전 2권, 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김영사)=그 옛날 초등학교 국어책에서 영희와 철수는 바둑이와 놀았다. 하지만 허영만 만화 '사랑해' 속에서 영희와 철수는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속도위반을 했고, 결혼을 했으며,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신혼의 단꿈에 젖는다. 만화가 남편과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유아기를 보낼 아기까지 삼위일체 세 식구가 이루어내는 단단한 사랑,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긴다.

만화가 허영만과 스토리 작가 김세영 콤비의 찰떡궁합은 세월이 가도 망가질 줄 모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세이툰 류의 말랑한 감수성과 달리 이들 콤비의 독특한 성찰은 보고 또 봐도 감탄스럽다.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성공하는 대신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그리는 만화다. 사랑에 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울고 웃는 주인공들의 삶은 뻔한 감상주의가 따라올래야 따라올 수 없는 사색과 깨달음을 안겨준다. 언제 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만화다.

강추2 ▶ 불의 검 애장판(전 6권, 김혜린, 대원씨아이)=명실상부한 한국 순정만화의 걸작. 작가 김혜린씨가 연재 12년만인 2004년 말 완성한 이 대서사 판타지 로맨스는 험난한 세월을 겪어낸 사람들을 위한 해피엔딩으로 세월을 아우른다. 배경은 고대 철기 부족 카르마키와 청동기 부족 아무르가 오랜 싸움을 하던 시대. 그 속에서 기억을 잃은 아무르의 최고 전사 가라한과 산골 처녀 아라의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가 근 10여 년 간 지속되면서 수많은 팬들을 애타게 했다. 결국 기억을 찾은 가라한은 아라를 아내로 맞는다. 아라는 불칼을 두드리며 격랑의 시대를 살아낸 여성의 성장을 보여준다. 이밖에 아무르의 왕 마리한과 신녀 소서노, 여장 남자가수 바리와 카르마키의 마녀 카라 등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하지 못한 인물들의 삶도 '불의 검' 페이지 곳곳을 장식한다.

김혜린씨의 작품 가운데 판타지와 시대극이 가장 선명하고 농도 짙게 결합된 이 만화는 작가에게 더이상 무엇도 요구할 수 없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아라로 대표되는 여성의 단아하고 넉넉한 이미지는 전쟁 같은 삶이 부서지지 않도록 세상을 받쳐온 힘이야말로 여성에게 있다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다. 가슴 속에 불칼 하나씩 벼르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만화이다 보니 어느 곳을 펼치든 모성이 가득하다. 무더운 여름, '불의 검'이 들려주는 건강한 야만의 노래를 지친 눈과 귀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진정한 재충전이야말로 이런 것이니.

김혜선 (영화주간지 필름 2.0 기자)

추천작 (여성용)

■ 그린빌에서 만나요(전 4권, 유시진, 서울문화사)=그린빌 아파트에 사는 평범하고 외로운 고교생 도윤. 어느날 아파트에 이사 온 사이비.사이언 남매와 마주치면서 생활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소통과 성장을 담담하게 그리는 역작.

■ 엠마(현 7권, 카오루 모리, 북박스)=19세기 영국 귀족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귀족 윌리엄과 하녀 엠마의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 영국 귀족과 하인들의 일상을 지극히 평범하게 묘사하면서도 캐릭터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담아낸다.

■ 불친절한 헤교씨(현 2권, 박기홍 글, 김선희 그림, 작은책방)=너무 유능해서 무시당하는 게임회사 여직원 소헤교의 서바이벌 스토리. 지하철 무가지와 포털사이트를 돌며 연재를 지속하다 단행본까지 출시된 파란만장한 만화다.

■ 백귀야행(현 14권, 이마 이치코 지음, 시공사)=일본 전래 괴담들을 다루는 판타지 호러의 모범 답안. 가장 전통적인 일본 가정 '이이지마' 가문 사람들을 통해 괴담을 풀어나간다. 괴담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센스가 탁월하다.

■ 궁(현 12권, 박소희, 서울문화사)=해방 이후 남북분단 없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가상의 한반도가 배경이다. 평범한 여고생이 세자빈이 되면서 궁중이 소란해진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근래 보기 드문 한국 만화계의 대형 히트작이다.

■ 바람의 저편(전 14권, 히가와 교코, 서울문화사)=어느날 갑자기 별세계에 떨어진 여고생 노리코와 정체불명의 남자 이자크. 이들은 서로 죽여야만 하는 운명의 연인. 판타지 서사극과 순정 로망의 결합이 보기 드물게 멋진 만화다.

■ 사랑의 아랑훼스(전 4권, 마키무라 사토루, 서울문화사)=1980년대 해적판으로 소개돼 순정만화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작품. 지난해 정식 번역본이 나왔다. 피겨 스케이팅을 소재로 은반 위에 선 천재들의 사랑과 고뇌를 그렸다.

■ 절대미각식탐정(테라사와 다이스케, 학산문화사)='미스터 초밥왕' 작가의 최신작. 주인공은 언제 어디에서건 음식을 먹으며 단서를 찾아내는 절대미각의 소유자 다카노. 그가 독특한 미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기선, 서울문화사)='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개그 버전. 게임방을 경영하면서 게임 폐인이 된 엄마 가영과 딸 옥희 그리고 '자뻑'과 자폐 기질의 만화가 선생님. 이들의 삼각 만담 코미디가 펼쳐진다.

쾌걸남 "불의에 불끈 … 뭐니뭐니 해도 무협 판타지"

강추1 ▶ 아파트(전2권, 강풀, 문학세계사)=진정한 공포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적 공간,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아파트 주민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사는 공간은 밀착돼 있다. 공간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지만 정작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잘 만나게 되지 않는다.

'아파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인공인 공포물. 밤의 특정시간에 반대편 아파트의 모든 불이 꺼지고 누군가가 죽는다. 익명의 공간, 익명의 죽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각자의 사정과 깊은 원한이 서려 있다. 수많은 주인공들마다의 사연을 촘촘히 깔고 서로 미묘하게 교차시켜 나가는 작가 강풀의 솜씨는 발군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 속에는 필연적인 비밀, 미묘한 오해들이 서로 엇갈린다. 공포와 해학이 수시로 교차하며 사람 사는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여름철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다.

강추2 ▶ 일지매(전8권, 고우영, 애니북스)=호쾌한 재미의 원형 하면 역시 기구한 운명에 맞서며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호걸의 일생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이 허황된 공상에서 그치지 않고 진짜배기 쾌감을 줄 수 있으려면 초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향기가 진해야 한다. 고우영의 사극만화들이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정수가 담겨 있는 게 바로 '일지매'다. 양반계층의 사정으로 버려지게 된 서자 일지매가 기구한 운명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에서 수련한 무술을 바탕으로 의적이 돼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고우영식 해학과 풍자, 자유로운 서술 방식이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명작이다. 특히 일지매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 묘사와 변천 과정은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다. 무협물이자 정치 사극의 요소도 띠고 있으며, 일지매라는 한 인간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한 탁월한 모험물이다.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소리꾼이나 마당극의 광대처럼 호쾌하고 시원하게 세상을 풍자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솜씨 앞에서는 옥에 티에 불과할 뿐이다.

김낙호<만화 칼럼니스트>

추천작 (남성용)

■ 단구(현 8권, 박중기, 학산문화사)=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양식 무협 판타지. 운명과 맞서는 처절하고 호쾌한 싸움의 연속이 강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식객(현 12권, 허영만, 김영사)=한국 요리를 가장 먹음직스럽게 그려내는 만화. 음식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히스토리에 (현 3권, 이와아키 히토시, 서울문화사)=알렉산더 대왕의 전투 서기관 에우메네스의 특이한 일대기. 인간 사회에 대한 물오른 통찰력으로 중무장했다.

■ 츄리닝 (현 5권, 이상신 글, 국중록 그림, 애니북스)=허름하고 편한 차림새로 친한 복학생 선배 자취방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의 개그만화. 인간의 치졸함에 대한 멋진 유머.

■ 어~이! 료마(현 17권, 다케다 데츠야 글, 코야마 유우 그림, 삼양출판사)=검술의 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 힘보다 화합과 실용주의를 펼친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

■ 야후 (전 20권, 윤태호, 학산문화사)=1980~90년대를 관통하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한 인간을 어떻게까지 분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대안역사 SF물. 거침없는 호흡과 전개 덕분에 마지막 권까지 손을 놓을 수 없다.

■ 바람의 파이터 (전 10권, 방학기, 길찾기)=강함의 진리를 찾아 나선 구도자 최배달의 인생. 굵고 간결한 화풍 속에 진정한 강함을 추구하던 의지가 역동적으로 녹아 있다.

■ 비천무 (전 4권, 김혜린, 대원씨아이)=선 굵은 무협물의 틀에 드라마틱한 순정만화 특유의 섬세함이 결합된 수작. 여성 팬들도 많지만 남성 팬들도 많은 대하 무협사극.

■ 아기공룡 둘리 (전 5권, 김수정, 대원씨아이)=언제 봐도 유쾌한 명랑만화. 둘리의 귀여운 모험도 재미나지만 둘리가 식객으로 눌러 살고 있는 집의 가장 고길동이 주는 페이소스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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