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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일본 '잃어버린 10년'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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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의 금리 인상이 임박했다. 제로 금리 시대가 5년 반 만에 드디어 막을 내리는가 보다. 소폭의 금리 인상이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는 대단하다. 경제 대공황 이래 가장 길었던 8년간의 디플레이션이 종식됐으며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반복되던 반짝 경기회복과 달리 지금은 일본 경기가 속절없이 무너질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 확장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일본은 종전 이후 최장기간의 호황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지목받던 고용.부실채권.설비의 3대 과잉이 경기회복과 함께 수면 아래로 이미 가라앉았고, 앞으로 일본의 과제로는 인구 고령화와 국가부채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수모를 겪던 일본 경제가 이제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과연 일본에 황금의 10년이 찾아올 것인가.

일본의 금리 인상 움직임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지난 4월 만나본 현지 일본 관리들의 표정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회복의 원동력이 '고이즈미 개혁'에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단행했던 쾌도난마식의 속 시원한 개혁은 아니었다. 파산한 리소나 은행의 주식을 일본 정부가 비싼 값에 사들이자 부실한 은행일수록 주가가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방향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점진적 제도 개선을 이룬 일본 정부의 노력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간기업의 자신감 회복이다. 일본기업들은 오랜 기간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통해 단단한 국제경쟁력을 다졌다. 여기에다 장기간에 걸친 버블 붕괴와 디플레이션으로 고비용 구조가 해소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도쿄 등 6대 도시 부동산 가격지수가 1970년대 말 수준까지 내려갔고 물가도 87년 수준까지 내려갔다. 경제환경이 변하면서 해외로 나갔던 공장들이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아웃소싱이 아니라 인소싱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확대로 임금 부담이 줄어들면서 기업의 수익기반이 개선됐다.

일본 경제의 급속한 체력회복에는 2002~2004년의 중국 특수가 숨어 있다. 일본은 이런 기회를 제대로 잡아 경제가 선순환으로 돌아서는 계기로 삼았다. 이제는 금리를 인상해도 좋을 만큼 체력을 보강한 셈이다. 중국 특수는 한국에도 찾아왔었다. 비정규직 비중도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는 고비용 구조 해소는커녕 서울이 생활물가가 세계에서 둘째로 비싼 도시가 돼버렸다. 인소싱이 아니라 아웃소싱이 확대되면서 중국 특수의 기회를 제대로 살려보지 못한 것이다.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으로선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미.일 간 금리격차가 작아져 엔화를 빌려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진정될 것이다. 그만큼 엔화환율이 내려갈 소지가 생기는 셈이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도 동반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엔화 실질 환율은 지난해 말보다 무려 60%나 내려가야 하며 위안화는 물론 동남아 국가들의 실질 환율도 대폭 하락해야 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게 되면 최근 원화 강세로 애를 먹는 우리 수출기업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고비용 구조의 해소다. 고비용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경쟁력 회복은커녕 경제체력만 고갈될 뿐이다. 일본처럼 10년 불황이라는 불행을 비켜가면서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를 고칠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