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혁신도시 건설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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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러나 혁신도시 건설은 규모를 줄일 것이 아니라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우선 정부가 혁신도시 건설의 명분으로 내건 국토의 균형발전 효과가 극히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지방의 침체는 경제적인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공기업 몇 개가 옮겨 간다고 갑자기 각 분야의 수요가 살아날 수 있을까. 더구나 혁신도시를 기존 도시 외곽에 신도시 형태로 지으면 기존 시가지의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다. 현재 대전의 구도심은 대덕이나 유성 개발로 인해 피폐해진 상태다. 또 광주 도심도 시청이 상무지구로,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옮겨가면서 상권 위축이 심각하다. 따라서 혁신도시 건설은 토지 보상을 받거나 땅값이 올라 혜택을 보는 소수의 땅 주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민에게는 별 이득이 없는 셈이다.

그뿐 아니라 중앙 정부가 전국에 175개 공공기관을 강제로 배치하는 것은 공공기관 자체의 효율성 따위는 아예 무시한 일이다. 공공기관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옮겨가길 원한다면 개별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와의 타협에 의해 기존 도시에 옮겨가는 것이 순리다.

또 혁신도시 건설을 위해 토지 수용과 보상이 시작되면 이들 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행정중심복합도시 등 전국에 걸친 개발사업의 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잘못 시작된 정책을 적정한 시점에서 멈추지 못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사례는 새만금을 비롯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법이 제정되지 않았고, 지구 지정도 되지 않은 지금이라도 혁신도시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국가적인 낭비와 비효율을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