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19년 전 소년 봉준호가 본 '괴물'의 정체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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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5-3'. 영화 '괴물'의 탄생에 얽힌 숫자입니다. "영화를 구상한 지 19년 만에, 준비한 지 5년 만에, 달라붙어 작업한 지 3년 만에 완성됐다"는 얘깁니다. 봉준호 감독의 말입니다.

어찌 보면 '괴물'이란, 봉준호 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같습니다. 그의 영화적 시선이 늘 '괴물 같은 시대'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는 지식인과 중산층의 허상을 파헤쳤습니다. '살인의 추억'(2003)은 공권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기본적인 치안조차 부재했던 1980년대를 돌아보았죠. 27일 개봉할 '괴물' 역시 괴물 같은 사회와 국가 시스템을 조준합니다. 괴수 영화라는 외피 속에는 국가.사회의 보호망 부재와 평범한 가족이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현실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에서 괴물은 이들이 맞서 싸우는 괴생물체인 동시에 시스템 자체입니다.

감독은 "프로파간다는 질색"이라며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는 좀 더 차별화된 괴수영화, 가족영화를 모색하면서 곁들여진 것뿐"이라고 하지만, 영화의 풍부한 정치사회적 맥락을 부정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가령 미 8군에서 방류한 독극물이 괴생물체 발생 원인이 되는 도입부의 설정은 2000년 미군의 독극물 무단방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괴물에 희생된 유가족들이 합동분향소에서 울부짖는 장면은 관객을 곧바로 '한국형 대참사' 혹은 '역사적 비극'의 익숙한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괴물 이미지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탄생한 19년 전입니다. 감독이 이미 밝혔듯, 87년 당시 고3이었던 봉준호는 수업시간에 창밖을 내다보다 한강다리 위로 기어오르는 괴물을 '분명히'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때 소년 봉준호가 보았던 괴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괴물'이 칸영화제에서 화제를 얻자 봉 감독을 인터뷰한 뉴욕 타임스는 그가 어려서부터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당시 한국에서 영화는 예술로 인정받지 못해 영화를 전공하지는 못했다고 썼습니다.

감독을 꿈꾸는 예술가 소년이 통조림 깡통 같은 교실에 끼어 앉아 대입 준비에 허덕이다 문득 창 밖을 내다보는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숨막힐 듯한 시대의 공기도 함께 떠올려 봅니다.

그가 보았다는 괴물은 어쩌면, 괴물 같은 시대, 괴물 같은 현실을 탈주하고 싶은 소년의 욕망이 만든 상상물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만약 괴물 같은 시대에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이 때때로 괴물 같은 예술(가)을 만들어낸다는 점일 것입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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