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택시 골라서 ‘쿵’…놀란 기사에겐 "10만원에 합의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9월 22일 오후 9시쯤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에서 30대 남성이 택시에서 내렸다.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 차를 뒤로 빼던 택시기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차 뒤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이 손님은 차에 부딪히지 않았으면서 거짓으로 다친 행세를 했다. 그러면서 합의금 10만원을 요구했고, 기사는 가지고 있던 현금이 7000원뿐이라며 일단 그 돈부터 승객에게 건넸다. 승객은 7000원을 받은 뒤 돌아갔다고 한다.

기사 입장에선 사고 조사를 받는 시간 동안 일을 못 하게 되고, 나중에 보험료 인상 부담을 겪느니 돈을 주고 합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남성은 이 같은 방식으로 올해 5월까지 4회에 걸쳐 합의금 명목으로 25만7000원 상당의 금액을 가로챘다.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 체보 당시 조모(31)씨가 가지고 있던 현금 316만원. 조씨는 개인택시에서 내린 뒤 택시에 고의로 부딪친 뒤 교통사고를 당한 척해 합의금 명목으로 택시기사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사진 관악경찰서]

경찰 체보 당시 조모(31)씨가 가지고 있던 현금 316만원. 조씨는 개인택시에서 내린 뒤 택시에 고의로 부딪친 뒤 교통사고를 당한 척해 합의금 명목으로 택시기사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사진 관악경찰서]

서울 관악경찰서는 개인택시를 노려 목적지에서 내린 뒤 후진하는 택시에 부딪혀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행세해 합의금을 받아온 혐의(사기 등)로 조모(31)씨를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강희수 관악서 경위는 “보험료를 회사가 내주는 법인택시에 비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개인택시 기사의 약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상습적으로 개인택시를 노려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기 범행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검거에 나섰다. 이 같은 수법에 응하지 않았던 택시기사와 힘을 합쳐 조씨에게 “합의금을 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지정된 장소로 돈을 받기 위해 나온 조씨는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체포 당시 조씨는 현금 316만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험료가 오르는 걸 피하려는 개인택시의 약점을 이용해 20만원~40만원 사이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며 “316만원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받은 돈”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현금으로 택시요금을 계산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 신원 조회 결과 조씨는 이 같은 허위 교통사고 전과 2범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조씨는 합의금을 받는 과정에서 친동생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조응현 관악서 교통과장은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기 범죄가 점점 지능화되는 만큼 평소 차량운행 때 교통 법규를 준수하는 운전습관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