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기업 임원을 인기투표로 뽑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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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공기업인 광업진흥공사가 상임이사 2명을 직원들의 직접투표로 선출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광진공은 "투명경영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투명과 선거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파벌이 생기고 경영효율이 떨어질 것이 뻔하다. 인기투표에서 다행히 팀장(부장)급 2명이 뽑혔지만 자칫 엉뚱한 사람이 몰표를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한심한 노릇이다. 사단장을 병사들의 인기투표로 뽑는 것과 같다. 엄정한 실적 평가가 우선돼야 할 공기업 임원 인사권을 직원들에게 넘겨주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발상이다.

이번 파동을 부른 광진공의 박양수 사장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열린우리당 창당작업을 맡았던 인물이다. 취임 일성으로 "전문성은 없지만 몸을 던져 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하직원 평가를 내팽개치고 인기투표부터 도입했다면, 광진공을 제2의 정치판으로 만들 작정인가.

비단 광진공뿐 아니라 요즘 공기업들의 인사 난맥상은 심각하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사장들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가스공사는 사외이사들이 사장 해임안을 통과시켰고, KOTRA와 마사회는 사장 선임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모두 차기 사장에 정치권 인사들이 유력하게 꼽히는 게 공통점이다.

참여정부 들어 공기업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달라진 것이라곤 신임 사장이 퇴직관료나 군 출신에서 정치권 출신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한때 공기업 감사를 차지하는 데 만족했던 정치권 출신들이 요즘에는 염치도 없이 사장 자리부터 꿰차는 추세다.

지난 14일 부패방지위원회가 감독부서 공무원을 배제하고 순수 민간인들로만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지시했지만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최근 인사 내홍도 따지고 보면 공기업 인사 개혁 드라이브를 건 정부 최고위층의 의지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낙하산 보은 인사를 '공기업 인사 개혁'으로 포장만 달리하는 것이다. 공기업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개념정리부터 분명히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