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북한이 요청도 안했는데…김여정 영상 목소리 지워 언론 배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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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일부가 12일 고(故)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 북한이 조화·조전을 전달하는 상황을 담은 영상을 취재진에게 제공하면서 북측 인사들의 목소리를 ‘묵음 처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눈치보기 논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은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화·조전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전달했다.

통일부가 촬영해 제공한 영상은 총 1분 45초. 모두 묵음처리됐다. 초반 27초 동안 김여정이 정 실장 및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과 인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이후 김여정이 정 실장에게 조의문을 전달하면서 12초 가량, 정 실장이 이어 19초 동안 얘기하지만 전혀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13일 ‘북측이 요청한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북한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영상의) 유음, 묵음 문제는 내부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영상 제공 과정에 여러 의사결정 단계가 있는데 당국자로서 책임감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남북 간 몇 차례 행사에서도 통일부는 영상을 묵음 처리하거나 북측 주요 인사의 발언을 편집해 제공했다. 이 때문에  통일부 기자들은 ‘묵음 처리 하지 말아줄 것’을 정부에 수차례 요청했다. 통일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등 이유를 들어 기자들의 현장 취재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영상을 신속하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목소리를 지운 편집 영상만 내놓았다.

북측의 요청이 따로 없었는데도, 알아서 영상을 묵음 처리한 건 정부의 과도한 북한 눈치보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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