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1주년 코앞 복지부동 북미…돼지열병으로도 못 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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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ㆍ미 정상회담 1주년이 코앞이지만 한반도 정세는 안갯속이다. 한ㆍ미ㆍ일 사이엔 긴밀한 협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이 복지부동이다. 한ㆍ미 외교당국은 서울에서 4~5일간 비공개 협의를 가졌다고 외교부가 5일 밝혔다. 이번 협의는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알렉스 웡 미 국무부 부차관보 간에 이뤄졌다. 지난달 31~1일에 싱가포르에서 이들의 상관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만난 직후다.

외교부는 4~5일 협의에 대해 “대북 정책 제반 사항에 관해 정례적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한ㆍ미 워킹그룹 과정의 맥락에서 이뤄졌다”며 “구체적 협의 내용은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여러가지 현안을 놓고 점검하는 수준에서 협의가 이뤄졌다”며 “한ㆍ미간의 이견이 있다거나, 미국이 (대북 제재 등에서) 입장 변화가 있기 때문에 협의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한에 방역 협력의 뜻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알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함께 5일 오후엔 대북 식량 지원 등도 논의됐다고 한다.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회동을 마친 한미일 북핵 수석 대표들이 회동장을 나서고 있다.   한국 측 북핵협상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부터), 일본의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연합뉴스]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회동을 마친 한미일 북핵 수석 대표들이 회동장을 나서고 있다. 한국 측 북핵협상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부터), 일본의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연합뉴스]

정부는 이날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의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를 열고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총 800만달러(약 94억원)를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450만 달러를 지원해 북한 영양 지원 사업을 하고, 유니세프를 통해 북한 모자보건 사업에 350만 달러를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북한이 “생색내기”라는 식으로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이번 지원이 물꼬를 트는 역할은 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북 식량지원으로 현재 경색 국면이 바뀌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자들이 에볼라 관련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 당국자들이 에볼라 관련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북 전문가들과 정부 일각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전망하는 쪽은 오히려 ASF 남북 공동 방역이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자강도 우시군 북상 협동농장에서 ASF 확진 판정이 나왔다고 보고했다. 한국에도 멧돼지 등을 통해 전염이 가능한 터라 한국 정부도 긴장하고 있다. 북한도 폐쇄 사회의 특성 상 전염병에 민감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ASF 관련 지원을 하는 것이 북한을 더 효과적으로 추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당시에도 개성공단에 검역을 위한 장비를 지원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41만 달러에 달하는 열 감지 장비를 지원했다.

그러나 ASF가 사람에겐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북한이 에볼라 창궐 당시보다 소극적일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어렵겠지만 북한에게 ‘한ㆍ미는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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