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백제 풍류 한국화에 담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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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에 있는 건양대학교의 한국화 전공은 학생을 뽑은 지 8년 밖에 되지 않은 신생 학과다. 과가 생길 때 부터 일해온 박완용(45) 교수는 크게 두 가지 고민을 안고 출발했다.

하나는 모든 지역 대학들에 공통인 지방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로 길이 안 보이는 한국화가 나아갈 돌파구를 뚫는 일이었다. 어려운 숙제를 안고 끙끙대던 박교수에게 한국 고대 문화사 전공인 서정록(48)씨가 빛이 되었다.

서씨가 쓴 '백제금동대향로'(학고재)를 읽은 박교수가 서씨에게 만남을 청했고, 서씨는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면서 자연스레 정신적인 스승이 되었다. 학교가 자리한 백제의 향기를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찾는 서씨는 학생들을 그 현장으로 이끌었고, 박교수의 지도 아래 지역의 전통을 잇는 새 한국화가 건양대에서 탄생했다.

지난달 26일 건양대 인문관에 있는 한국화 작업실에 서씨가 들어서자 학생들이 "선생님"을 부르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서씨는 "축하한다"며 학생들 어깨를 두드려줬다.

이들의 노력과 솜씨가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알려져 오는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도쿄(東京)에 있는 주일본 한국문화원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기 때문이다.

'백제를 찾아서'란 주제로 해마다 졸업작품전을 마련해온 박교수는 "이제 그 첫 열매를 따는 셈"이라며 "힘든 과제를 말없이 따라와준 학생들이 고맙다"고 4학년생들 손을 잡았다. 박교수는 중국에까지 건너가 석채와 자연 염료를 구해오는 등 재료학 공부까지 게을리하지 않은 제자들이 대견한 눈치였다.

전시회를 앞두고 마무리가 한창인 학생들 작업을 둘러보던 박교수와 서씨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지난해부터 백제의 유적지를 답사하며 현장 스케치를 충실하게 한 작품들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색감과 백제의 숨결을 타고 현대적인 한국화로 새롭게 태어났다.

전통 오방색이 신세대가 좋아할 만한 파스텔톤으로 변주되고,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가 무덤의 혼령을 떠나보내는 '아리랑'이란 제목으로 되살아났다. 백제 전돌의 문양은 실내 풍경의 벽지와 타일에 나타나고, 정림사지 5층탑 언저리에 핀 민들레와 해바라기가 유적의 고즈넉함과 허망함을 아울러 표현한다.

서씨는"관습을 벗어나 자기가 느낀 대로 옛것을 여기로 가져오는 젊은이들의 감각이 놀랍다"고 평을 겸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구름무늬가 '바람.흐름.결'의 풍류사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서씨 이야기는 학생들 작품에서 21세기의 풍류가 되어 살아 흐르고 있었다.

논산=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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