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144 - 라면이 붇기 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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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뻘뻘 흘리며 산 중턱에 이르자 배가 몹시 고팠다. 배낭을 풀고 코펠을 꺼내, 가지고 온 물통의 물을 부었다. 라면을 넣고 나니 마실 물이 더 필요했다. 마침 조금만 내려가면 샘이 있는 지점이었다. 친구를 남겨놓고 물을 '길러' 산길을 내려갔다. 라면이 '불기' 전에 다녀오려고 서둘렀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길러'와 '불기'는 틀린 표현입니다. '길으러'와 '붇기'로 고쳐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샘 따위에서 물을 떠내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는 '길다'가 아니라 '긷다'입니다. 이것은 ㄷ 불규칙 용언입니다.

이 용언은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말과 결합할 때는 어간의 ㄷ이 ㄹ로 바뀝니다. '긷다'의 경우 '길어, 길으면, 길어서, 길으니'처럼 활용하는 것이지요. 위 예문에서는 문맥상 '긷+으러'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ㄷ이 ㄹ로 변해 '길으러'가 됩니다. '물에 젖어 부피가 커지다'라는 뜻의 단어는 '불다'가 아니라 '붇다'입니다. '체중이 붇다'에서처럼 '분량.수효가 늘어나다'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붇다'도 ㄷ 불규칙 용언입니다. 위 예문의 경우는 '붇+기'의 형태인데 뒤에 자음이 오므로 ㄷ이 ㄹ로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붇기'로 써야 합니다. 모음이 연결되면 '불어, 불으니, 불으면'처럼 활용합니다.

활용 형태가 이와 같은 단어로는 '듣다, 싣다, 일컫다, 묻다(問), 걷다(步)' 등이 있습니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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