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대는 폼페이오 vs 볼턴, 북핵 협상에 악재

중앙일보

입력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문제를 포함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놓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미 CNN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AP=연합뉴스]

 CNN은 4명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두 사람의 갈등은 최근 북한과 이란, 베네수엘라 사태를 계기로 깊어졌으며, 이는 두 사람의 성향 차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볼턴 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곁에서 정보를 독차지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볼턴 보좌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정치적 야망을 위해 국무부 장관 자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미 외교가에선 폼페이오 장관이 주지사 등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공식 석상에선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편이다. 반면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하는 등 대북 경고의 선봉장에 서 왔다. 미 정부 관계자는 이 매체에 "볼턴이 때로 트위터를 통해 전면에 나서려고 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분이 좋지 않다”고도 전했다.

 볼턴의 ‘돌발 트윗’은 올해 3월 미 재무부의 대북제재 발표 사태 때 불거진 적이 있다. 3월 21일(현지시간) 재무부가 중국 국적 선박 2척 등 95척의 제재 위반 및 의심 선박 명단을 발표하자마자 볼턴은 기다렸다는 듯 “재무부가 아주 중요한 조치를 오늘 했다”며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몇 시간 뒤 “제재를 철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불쾌감을 나타내는 트윗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3월 21일(현지시간) 재무부의 대북제재 조치 발표를 리트윗한 볼턴 보좌관. [트위터 캡처]

3월 21일(현지시간) 재무부의 대북제재 조치 발표를 리트윗한 볼턴 보좌관. [트위터 캡처]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우리 정부 당국자는 "북한과 관련한 정책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전담을 시켰지만, 이란·베네수엘라는 특별히 담당자를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경우 백악관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북한과 관련해 발언을 자제해 왔던 볼턴 보좌관이 폼페이오 장관과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건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부터다. 3월 첫째주 볼턴 보좌관은 주요 방송사 5~6곳을 돌며 북한 관련 인터뷰를 했다. CNN도 22일 보도에서 "최근 볼턴 보좌관이 중앙정보국(CIA)에 북한과 관련한 질의서를 보내면서 폼페이오 장관을 배제해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폼페이오가 격분했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무장관에 오기 직전에 CIA 국장이었다.

 볼턴 보좌관의 존재감이 커지는 데 대해선 우리 외교안보 당국에서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가 최근 볼턴 보좌관의 ‘단독 방한’ 가능성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도 있다. 북ㆍ미가 장외 신경전을 벌이는 국면에서 대표 매파인 볼턴 보좌관만 한국을 찾아 강성 발언을 내놓고 떠날 경우 북한이 협상 거부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어서다.

 미국 대외 정책을 움직이는 두 축인 볼턴과 폼페이오가 갈등을 빚을수록 북핵 협상은 산으로 간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내에서 북핵 협상을 놓고 가뜩이나 회의론이 번지고 있는데 두 사람이 갈등을 빚을 경우 현장의 북핵 대응 라인은 일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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