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재야출마의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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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2일 오후 서울 신길동 우신극장에서 열린 범민주연합의 후보추대대회는 한편으로는 후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논리의 장난에 휘말린 듯한 기묘한 기분을 주었다.
이날 대회에서 입후보자를 비롯 참석자들은 「성향」과 「속셈」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짜증스럽고 식상한 기존 정계에 모처럼 「해야할 말」과 「해야 할 일」을 털어놓고 다짐했다.
그들은 『여야가 이 나라를 4개로 분할점거하고 있다』며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편협한 지역감정에 안주하려는 기존 정치행태를 꼬집었고 특히 제도권 야당을 『민주개혁의 주체의지가 결여된 여정권의 예하부대』라고 혹평한 것은 표현에 지나친 점은 있다하더라도 현정치권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지적됐다는 점에서 공감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유신시절이나 5공때만 하더라도 측은하기 짝이 없었던 야권의 대여투쟁에 상당수 국민이 심경적 동조를 보였었지만 이제 여소야대 등 상황과 여건이 바꿔었음에도 여전히 그 「울」 을 못 벗어나는 구태의연함에 식상과 환멸의 「켜」가 더욱 두터워지고 있는 것이다.
『1노3김의 청산』이라든가 『4당의 황금분할』이라는 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일지도 모른다.
이런 제도권정치에 대한 불만을 이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 가능성 또는 진보적 정치의 가능성으로 계산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이처럼 「순수한」주장만큼 그들의 동기도 순수한 것이며 그들의 주장만큼 정치권의 체질개선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의문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지난날 「야권후보 단일화추진」이니 하는 명분들이 결국 야권의 분열만 조장하지 않았던가 하는 점을 기억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복잡한 인맥구성이나 파벌별로 상이한 선거참여 의도 등을 볼 때 비록 「한 목소리」를 냈다고 해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 아닐까 싶다.
또 논리적으로는 야권의 단일화를 외치면서도 결론적으로 야권의 분열을 공고화시키는 등 오히려 역기능의 면도 있는 것이다. 이들의 등장을 보면서 적어도 기존 정치권은 이같은 비판적 인식이 폭넓게 확산돼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울러 범민주 역시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행마」가 결과적으로 어떤 여파를 미치게되는지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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