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올 여름 「농활」…현지 농민들의 반응 |두 손 내젓는 농민과 의식화 자제로 "타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의식화 농활」「통일 농활」등을 이유로 일부 지역 농민들 사이에서 거부 움직임까지 보인 가운데 전국 1천2백 여 개 마을에서 대학생 2만 여 명이 벌인 농촌활동이 19일로 막을 내렸다.
지난 10일부터 실시된 이번 농활기간 동안 농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수입개방 문제 등 농 정 비판부분에선 학생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으나 통일 등 시국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과 상당 부분 다른 견해를 나타내 학생들은 당초 준비했던 의식화 프로그램을 일부 수정해야만 했다.
◇농민 반발=11일 오후 충남 홍성군 홍성읍 등 군내 18개 마을에서 농활을 벌이려던 서울대생 2백 여 명은 이중 4개 마을이 학생들의 농활을 거부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홍동면 운월리 운곡 마을 이장 주선섭 씨는『전대협의 이념이 농민들의 생각과 맞지 않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거부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이웃마을에서「원정농활」을 벌여야했다.
홍동면 상하중 마을은 마을회의와 개발위원회를 열어 농활자체를 거부하는 바람에 상하중 농활대는 해체, 다른 농활대로 분산 합류됐다.
상하중 농활 대원 안 모 군(20·서울대 법학2)은『면이나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이장들이「농활대를 받으면 개발혜택을 관으로부터 받을 수 없다』고 주민들을 회유, 마치 농활 거부가 전체 주민의 의사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운곡 마을 주민 주 모 씨(닭)는『학생들이 농촌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고맙고 기특하게 보이지만 농민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학생 농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의식화 자제=학생들이 농민들과 어울리는 방법은 근로 활동·분반 활동 등을 통한 직접 접촉과 농활신문·비디오 상영 등 매체를 통한 방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민들은 특히 농활 대원들의 분반 활동 가운데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시키지나 않을까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외대생 15명이 농촌활동을 펴고있는 전북 부안군 계화면 주민 김 모 씨(44)는『임수경 양이 외대생이라 학생들이 정치나 통일 얘기를 꺼낼까봐 걱정스럽다』며 『농민들도 이제는 관의 일방적 지시나 대학생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정도의 의식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대체로 학생들의 통일 운동이나 전교조 지지 등의 견해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계화면 조포리 외대 농활대장 손 모 군(22)은『대 농민 선전지침으로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실제활동과 안 맞는 부분이 많아 지역 특성에 맞게 농활 내용을 수정해야할 필요성이 크며 자칫 주민들을 자극할 소지가 있는 논쟁을 가급적 피할 필요를 느꼇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포리 외대 농활대는 학생반 분반 활동을 아예 과외수업 형식으로 진행,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홍성군의 서울대생들은「홍성농민」이라는 농활신문을 한차례 제작, 군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약 2천부가 배포된 이 신문에서 학생들은「수입개방, 누구를 위한 것인가」「농촌 교육과 교원노조」「임수경 양의 축전참가는 정당하다」는 기사를 실었으나 농민들은 임 양의 평축 참가·교원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하거나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반면 수입개방·수세 등 농정에 관해서는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등 상당히 활발한 의견을 제시했다.
◇관과의 마찰=행정관청 등의 지나친 감시는 일부지역에서 관·학생간의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부안군 보안면 만회리 마을 회관에서 12일 외대생들이 상영하는 비디오『일어서는 당』을 보고 있던 주민 30여명에게 부안 경찰서 경찰관 15명이 나타나 비디오 상영을 중단시켜 학생들의 집단항의를 받기도 했다.
군·면사무소나 경찰은 이외에도 학생 명단과 농활 프로그램을 이장을 통해 일일이 보고케 하거나 수상한 학생들의 활동을 신고토록 해 일부 주민과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농활 평가=올 여름 농활에 대한 학생·농민들의 시각은 여전히 큰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했다.
홍동면 송정 마을 김기순 이장은『정부의 농촌·농민 정책은 잘못된 것이 많아 여의도 농민시위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지만 학생과 농민이 합해서 반정부 운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홍성군 서울대 농활대장 김석규 군은『정부에서 학생들의 농활을 의식화·좌경용공활동 등으로 몰아 불이고 있지만 이번 농활은 농촌문제를 이해하고 현정권의 반 통일성을 폭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하고『다만 현장의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져 그 방법에 신중을 기하고 일부 프로그램을 수정한 것』이라고 밝히고『농민 스스로보다 관의 지나친 억압으로 학생들의 순수 봉사활동마저 외면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비난했다.【홍성· 부안=전영기·고대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