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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앓는 중국 세계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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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은 세계문화유산 23곳, 자연유산 4곳, 자연 및 문화유산 4곳 등 모두 31곳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많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 중국 내 세계유산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런 지적은 중국 국가문물국이 지난달 중순 장시(江西)성 루산(山)에서 개최한 '세계유산 관리를 위한 대책회의'에서 나왔다. 회의에는 유엔 세계문화유산센터 직원과 해외 문화유산 전문가, 중국 문화유산 관리책임자 등 14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중국 관광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만리장성의 90%가 현재 충분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7000여㎞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 때문에 관리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주민들의 문화재 보호의식도 부족해 장성이 갈수록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 자금성의 경우 하루 평균 입장객이 4만여 명에 이르고 휴일에는 10만 명을 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관리가 힘들어지자 중국 문화재 당국은 지난해부터 하루 입장객을 2만5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하루 허용 입장객 수를 그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나라 황제들이 묻힌 베이징 '명 13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매년 1억 위안(약 120억원) 이상의 입장료 수입을 올리고는 있지만 수입의 50%는 수리 등 관리비로 들어가는 실정이다. 산둥(山東)성 태산은 케이블카 설치로 이미 원래 모습을 잃었고, 안후이(安徽)성의 황산은 호텔 건립 등 마구잡이 개발로 자연경관의 상당 부분이 훼손됐다.

중국 국가문물국의 링린(凌琳) 부처장은 "문화유산에 대한 관광객 숫자가 너무 급속히 늘다 보니 유산 주변의 마구잡이 개발과 관광객에 의한 문화재 훼손이 심각한 게 사실"이라며 "이에 따라 정부는 가능한 한 많은 예산을 편성해 문화재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참석자들은 훼손 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을 경우 몇 년 안에 상당수 문화유산의 지정이 철회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입장객 제한과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 정비가 즉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엔 세계문화유산센터는 회의에서 문화유산에 입장객이 지나치게 많으면 보호가 어려운 만큼 관광객을 무조건 많이 유치하는 현재의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권고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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