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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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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누구에게나 18번이 있다. 노래가 되었건, 요리가 되었건, 가장 대표적인 것을 18번 혹은 시그니처(signature)라고 한다. 어느 식당에 가든 우리는 그곳의 시그니처 요리를 맛보고 싶어한다. 골프장들도 시그니처 홀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시그니처란 본인 고유의 필체로 자기 이름을 적는 것, 즉 서명(署名)을 뜻하는 말이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때 행복 느껴 #한국, 내면의 행복은 최하위권 #내면 들여다 보는 질문 궁리해야

요리나 골프 홀, 제품 등에 ‘시그니처’를 붙여서 부르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그곳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람에게도 시그니처 캐릭터(대표 강점)가 있다.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그만의 대표적 특성을 의미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질문이 있다

그를 생각할 때면 처음 만난 날 그가 던진 질문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는 학문적 명성만큼이나 키가 컸다. 유학 생활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려 있던 내게 육체와 정신이 모두 압도적이었던 그가 던진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아파트, 차, 컴퓨터가 있니?”

그렇다고 답을 하자, 지도교수는 그럼 됐다고 말씀하시고는 곧장 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제대로 된 공부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는 내게 지도교수가 던진 이 평범한 질문은 꽤 인상적이었다. 생활의 도구와 연구의 도구를 갖추었느냐는 이 질문은 그분에 관한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와중에 오히려 더 강렬해지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던진 질문을 기억하는 행위이고,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가 던진 질문을 따라 던지는 행위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그니처 질문이 있다. 어머니는 늘 “밥은 먹었니?”라고 물으신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형편은 이미 넘어섰다는 것과 자식 역시 자녀를 둔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을 쉬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그 질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늘 밥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라면, 성직자는 늘 ‘영혼의 양식’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다. 그들의 정체성이 육이 아니라 영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

한 사회에도 그 사회만의 시그니처 질문들이 있다. 미국 갤럽은 각국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추가로 제시했다.

어제 하루,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았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했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까?

이 질문들을 던진 이유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때, 뭔가를 배워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충만할 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일을 잘해낼 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믿을 사람이 있다고 안심할 때, 그리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을 때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기분은 돈보다는 존중·성장·유능·지지·자유와 같은 내면의 욕구가 결정한다.

이 다섯 가지 질문들에 ‘예’로 답한 사람들의 비율로 각국의 순위를 정한 결과, 매우 충격적이게도 우리나라는 89개국 중 83위를 차지했다. 내면의 자유와 행복의 순위에서 최하위권이다. 그 조사에 임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쩌면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질문들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순위가 나올 수 있었을까?

실종된 질문을 복원해야 할 때

우리 사회의 인생 교과서는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에 관한 질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인생 수업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좀처럼 접하지 못한다.

돈을 잘 버는지는 물어왔지만, 자율적으로 살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대기업에 다니는지는 물어왔지만, 존중받고 사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파트 평수는 물어왔지만, 외롭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는 묻지 않았다. 내면에 대한 질문이 실종된 사회였다.

질문이 바뀌어야 관심이 바뀐다. 이제 그동안 잊혔던 질문들을 우리 삶의 전면으로 부상시켜야 한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의 원래 의미대로 정말 안녕한지를 물어야 한다.

가정의 달에, 자녀들에게 물려줄 나만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