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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16화. 섭소천과 영채신

중앙일보

입력

귀신도 감동시키는 진실한 마음

섭소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천녀유혼’에서 둘은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섭소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천녀유혼’에서 둘은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옛날 오랜 옛날, 중국 어딘가에 영채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일이 있어 먼 곳에 다녀오던 중 한 절에서 머무르게 되었어요. 그날 밤, 한 여자가 그를 찾아와 함께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채신은 염치와 도리를 생각하라며 꾸짖고 내쫓았죠. 방을 나가며 그는 황금 덩어리를 영채신 앞에 놓았지만, 영채신은 이조차 의롭지 못하다며 던져 버리고 말았죠. 다음날, 절에서 묵던 한 사람이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튿날엔 그의 하인도 마찬가지로 시체로 발견되었죠. 그들의 발바닥에 구멍이 나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여자는 다시금 영채신을 찾아와 사실을 밝혔습니다. 자신은 요절한 귀신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밤엔 요물이 영채신을 죽이러 올 거라는 것을. 섭소천이라는 이름의 귀신은 영채신을 노렸지만, 그의 올곧은 마음에 감동하여 그를 구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사실을 밝힌 것이었죠. 요물의 위협에 빠지게 된 영채신. 과연 그는 살아날 수 있을까요?

중국에『요재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청나라 때 포송령이 지었다는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죠. 책은 귀신이나 정령, 괴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천녀유혼’이라는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섭소천’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귀신과 사람의 기묘한 인연이 펼쳐지는 이야기로 말이죠. 인간이나 동물 같은 생물체의 영혼이 저세상으로 가지 않고 남아 움직이는 귀신은 본래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음양설에서 인간은 양이고 귀신은 음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쉬우며, 무속 신앙에서 귀신이란 원한이 남아 저승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승에 남아서 떠돌며 인간의 양기를 빼앗는다고 하죠. 그 밖에도 귀신이 해코지했거나, 귀신 때문에 병에 걸린다고 하는 등 인간에게 좋은 존재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섭소천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인간에게 원한을 품고 있진 않지만, 요물의 협박으로 인간을 해치는 역할을 맡았죠. 그들이 유혹에 넘어가거나, 황금 덩어리(로 보이는 나찰의 뼈)를 탐했다곤 하지만, 그들을 해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런 섭소천이 정신을 차린 것은 영채신의 올바른 마음을 만났기 때문인데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도리를 지키는 인간의 마음이 귀신을 감동하게 한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영채신이 섭소천의 말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근처의 사람들이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이한 뒤에 ‘귀신’이 찾아온다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정말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영채신은 그 말을 믿습니다. 비록 섭소천이 귀신이지만, 그 마음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섭소천의 말대로 영채신은 절에 머무르던 ‘연적하’라는 서생과 함께 지냈고,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죠. 연적하는 사실 뛰어난 검객이었고, 그에게는 스스로 움직이며 적을 쓰러뜨리는 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역시 영채신의 진심을 믿고 인품에 감동하여 그를 구하고자 힘을 쓴 것이죠. 이처럼 ‘섭소천’은 진실한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귀신이라도 진실한 마음 앞에서는 감동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올바른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채신은 섭소천과의 약속을 지켜서 그의 뼈를 가져다 자신의 서재 밖에 무덤을 만들어 줍니다. 더는 요물에게 협박당하지 않도록 구해준 것이죠.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요. 섭소천이 다시금 그 앞에 나타납니다. 영채신의 신의에 보답하는 뜻에서 섭소천은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기로 합니다. 그렇게 귀신과 인간의 기묘한 생활이 시작되었죠. 훗날 둘은 맺어지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산 사람의 기운을 받으며 생활한 섭소천은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평온한 삶을 보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죠. 

『요재지이』에는 이처럼 인간이 귀신만이 아니라 여우의 정령이나 까마귀 요정 같은 온갖 요물들과 함께 살아가며 맺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들 귀신이나 정령, 요정들이 때로는 인간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설사 괴물이라도 진실한 마음만 있다면 인간보다도 훨씬 나은 존재라는 것을 이들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섭소천’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천녀유혼’도 이 점은 마찬가지죠. 비록 영화 속에선 섭소천과 영채신이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하지만, 두 사람이 세상을, 그리고 서로를 구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건 귀신이건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나 출신, 신분 같은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진 실한 마음이라는 것은.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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