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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첫 보도 소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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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내 방송사들이 월드컵 중계에만 매달려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북한 미사일 문제를 소홀히 다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 기간 방송사인 KBS의 경우 방송사 중 가장 대응이 늦었던 데다 보도의 양도 적었다. 일본 NHK와 비교하면 첫 자막 시간은 무려 58분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의 정체성에 심각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 SBS가 가장 빨라=북한이 첫 미사일을 발사한 시각은 5일 오전 3시32분. 국내 방송사들이 인용한 NHK의 첫 보도는 4시29분에 나왔다. 이때 KBS(2TV).MBC.SBS-TV에선 독일-이탈리아의 월드컵 4강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미사일 소식을 가장 빨리 전한 곳은 SBS. 오전 4시59분에 "日 NHK, '북한 미사일 발사' 보도, 오늘 새벽 3시32분, 동해상에 떨어져"라는 정지 자막을 내보냈다. MBC는 이보다 7분 늦은 5시6분 첫 자막을 띄웠다. 그러나 KBS의 경우 첫 자막이 5시27분에야 처리됐다. 자막 횟수에 있어서도 MBC와 SBS가 각 네 차례와 두 차례였던 반면 KBS는 한 번에 그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중계는 계속됐다. 방송사들은 자막을 통해 겨우 소식을 전하는 수준이었고, 속보는 중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방송됐다.

MBC는 연장전에 들어가기 전인 오전 5시53분 속보를 전했다. KBS-2TV는 그나마도 없었다. 1TV가 5시56분 정규 방송을 시작하면서 보도를 했을 뿐이다.

이와 관련, 시청자들은 방송사의 무성의한 보도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한 시청자는 KBS 인터넷에 "월드컵에 정신 팔려 정작 중요한 시점에 자막으로 속보 내보내고….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며 "그나마 아침 뉴스를 기다렸는데 일본과 미국 방송만 인용해 내보낸다"고 비판했다.

◆ NHK, 고정 자막에 정규 방송도 중단=반면 일본 공영방송 NHK의 보도 태도는 기민했다. NHK 한국지부에 따르면 NHK는 4시29분 1보를 내보낸 데 이어 5시29분부터는 9분가량 화면 테두리를 자막으로 채웠다. 월드컵 중계 화면 크기를 줄이고 역L자 모양으로 띠를 두른 뒤 큰 글씨의 자막을 고정으로 내보냈던 것. 5시53분에는 월드컵 중계를 중단하고 긴급 뉴스를 편성했다. 중계는 다른 채널로 돌렸다. 이 뉴스는 7시 정규 뉴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됐다.

◆ 2TV라서 괜찮다? =한림대 유재천 특임교수와 숙명여대 박천일 교수는 "특히 공영 방송사는 국가적 관심사나 안보.국제정세 등의 주요 이슈를 우선적으로 보도할 책임이 있다"며 "수신료를 받는 KBS가 월드컵에 매몰돼 공영 방송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KBS의 한 관계자는 "축구를 중계한 2TV는 오락.교양 채널인 만큼 재난방송 등을 맡는 1TV와 기능이 다르다"며 "다른 방송사와의 직접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상복.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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