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꽃무늬 막대 사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1969년 스페인의 한 카페, 두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대화 끝에 한 남자가 신문지에 슥슥 꽃 모양을 그립니다. 노란 꽃 모양 속에 경쾌한 빨간 글씨, 막대 사탕의 대명사가 된 ‘추파 춥스’ 로고는 50년 전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사탕 껍질 그림을 그린 이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 마주 앉은 이는 추파 춥스 사장 엔릭 베르낫(1923∼2003)입니다. 달리는 노란 네모 로고를 꽃 모양으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그전까지는 사탕 옆면에 있던 로고를 윗면에 달라는 조언도 덧붙입니다. 계산대 위에 잔뜩 꽂혀 꽃다발처럼 돋보이는 이 막대 사탕, 달리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바닷가에서 시계들이 녹아내리는 그림 ‘기억의 지속’(1931)보다 더 친숙한 이미지, 달리를 설명하기 좋은 말은 ‘추파 춥스 로고 디자이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가 달리가 디자인 한 로고. [추파 춥스 인스타그램 캡처]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가 달리가 디자인 한 로고. [추파 춥스 인스타그램 캡처]

사과잼 공장에서 일하던 베르낫은 1958년 추파 춥스를 고안했습니다. “사탕 먹던 아이들이 손을 끈적하게 만들어 부모를 곤경에 빠뜨리곤 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플라스틱 막대 하나로 추파춥스는 사탕 시장을 바꿔 놓았습니다. 베르낫의 이 막대 사탕은 2004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디자인 기획전 ‘소박한 걸작들(Humble Masterpieces)’에 포스트잇·면봉·레고 등과 함께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추파’는 스페인어로 ‘빨다’, ‘춥스’는 ‘빠는 것’에서 나온 말이니 이 상품명을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쭙쭙’쯤 될까요. 지금도 세계 어느 가게 계산대 앞에서는 “이 썩으니 딱 하나만”이라는 부모 말에 무슨 맛을 고를지 필생의 고민을 하는 어린이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충치와 전쟁을 치르는 부모들에게 어린이날이 성큼 다가왔다는 비보를 전합니다. 이걸 쓰느라 추파 춥스 세 개째 먹고 있습니다. 껍질을 찢어지지 않게 벗기는 데는 세 번 다 실패했습니다.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