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상상, 현실의 법을 만나면 …

웰컴 투 동막골

'돈을 갖고…' 검은 돈 원주인이 달라면 줘야

'하늘이시여' 왕모·자경 "호적상 남남" 결혼 가능

판.검사들은 '만약에~'라는 가정을 금기시한다. '있는 사실과 법에 따라서만' 판결하고 수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과 법무부가 이런 금기를 깼다. 대법원은 자체 홍보책자에서 '영화가 법을 만났을 때'라는 코너를 마련, 각종 영화 속에서 전개되는 가상의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놓았다. 법무부도 홈페이지에 '드라마 속의 법률' 코너를 마련해 법적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 이정석 판사는 "일반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법 교육의 일환으로 시도해봤다"고 말했다.

◆ '수류탄 던져 팝콘 만든 병사 유죄'=팝콘이 눈 내리듯 쏟아지는 장면은 '웰컴투 동막골'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북한군과 대치하던 국군 장교 표현철(신하균 분)은 실수로 수류탄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동막골 곳간이 부서지며 옥수수가 팝콘으로 변한다.

표현철의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형법(제173조)상 업무상 과실이라는 것이다. 폭발성 있는 물건을 터뜨려 재산에 손실을 끼쳤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표현철이 7년 이하의 금고형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고 밝혔다.

◆ '조폭 마누라와 이혼 가능'='조폭마누라'에서 강수일(박상면 분)은 폭력조직의 부두목 차은진(신은경 분)과 결혼한다. 물론 차은진이 조폭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이를 안 강수일은 이혼을 요구한다.

대법원은 강수일이 이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차은진이 이혼에 동의해주지 않을 경우 강수일은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현행 민법(제840조)상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로 ▶학력 ▶경력 ▶직업과 같은 중대한 사항을 상대방에게 속인 것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 "잘못 입금된 비자금 돌려줘야"='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천달수(박중훈 분)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자신의 통장에 100억원이 입금된 사실을 알았다. 100억원은 모 재벌의 비자금이었다. 재벌이 "잘못된 송금"이라고 반환을 요구한다면 천달수는 돈을 돌려줘야 할까.

비록 검은 돈이더라도 원주인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민법(제741조)에 따르면 타인의 재산으로 인해 얻은 부당한 이익은 반환해야 한다. 천달수가 이를 어길 경우 형법상 점유이탈물횡령죄(360조)의 적용을 받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 "여동생 주민등록증 이용한 취업은 해고 사유"=드라마 '불꽃놀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여주인공 신나라(한채영 분)는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여동생의 주민등록증이 이용, 고졸 판매원으로 취업한다. 법무부는 신나라를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입사 당시 허위기재 사실을 알았더라면 고용하지 않았을 경우 그 이유를 들어 해고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것이다.

◆ "호적상 친딸인지가 중요"=큰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해피엔딩은 법률적으로 가능할까. 친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살아가던 자경(윤정희 분)은 방송일을 하면서 알게 된 구왕모(이태경 분) 앵커와 사랑을 싹 틔운다. 하지만 구왕모의 새어머니가 사실은 자경의 친어머니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사랑은 난관에 부닥친다. 자경에게 친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동일인이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법무부는 법적으로 구왕모와 자경이 결혼할 수 있다고 했다. 호적상 자경은 구왕모의 새어머니의 친딸로 올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왕모 역시 새어머니의 친아들이 아니므로 자경과 왕모는 호적상 부모가 각각 다른 셈이다. 자경의 출생 비밀이 결혼 전에 밝혀졌든, 결혼 뒤에 밝혀졌든 상관없이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유효하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법무부는 자경이 계모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친족끼리 근친혼을 금지하는 우리 법에서 계모의 남동생은 결혼이 금지된 혈족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