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의 남자들'에 둘러싸인 한명숙 총리 … 멀어지는 '책임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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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한명숙(얼굴) 총리는 "당과 본격적으로 협의해 (정책을) 유연하게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유럽 순방 도중 "5.31선거에서 참패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총리로서 향후 정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귀국 후 한 총리는 정국에서 오히려 소외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부는 재산세 증가율 억제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5.31지방선거 이후 등 돌린 민심을 다독거리기 위한 조치였다. 여당의 요구에 청와대가 수용 의사를 밝혔다. 대책은 다음날 곧바로 나왔다. 이 과정에 총리실은 별로 한 일이 없다. 8.31 부동산 조치를 만들 당시 총리실이 주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 사라진 책임총리=청와대는 한 총리를 임명할 때 "책임총리제는 계속된다"고 밝혔다. 한 총리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언급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펼쳐진 적은 없다는 지적이다.

한 총리는 취임 후 지방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한다며 고위 당정협의회를 포기했다. 이 때문에 식품안전처 설립안을 비롯한 각종 현안이 선거 바람에 줄줄이 뒤로 밀렸다. 선거에서 참패한 뒤 지난달 27일에야 고위당정협의회가 재개됐다.

정부 안에서 총리의 영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달 23일 급식사고 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장관회의에서 한 총리는 장관들에게 짜증을 냈다. 한 총리는 "주무부처를 명확히 해야 책임 있게 대처할 수 있지 않으냐"며 감독 소홀을 강하게 질책했다. "취임 초기부터 장관들이 현장에 가보라고 했는데 왜 안 가느냐"고 따져 물었다.

◆ 제청권 제대로 행사했나=이번 주 발표한 개각 과정에서 총리실은 사실상 소외됐다. 경제.교육부 총리에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기용됐다. 제청권 문제가 불거지자 총리실은 "여러 차례 대통령과 인사에 대해 상의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대통령의 남자'들이 포진한 마당에 총리의 '말발'이 먹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문회를 통과해 실제로 임명이 되고 나면 청와대가 한 총리를 통하지 않고 김병준 교육부총리나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직접 접촉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새로 임명된 부총리 후보자들은 책임총리제를 실제로 기획한 분들"이라며 "오히려 책임총리제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회 관련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청와대의 직할체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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