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수학 부진아 공부 잘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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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요. ”

“그럴까요, 다시 한 번 해보세요. ”

“다섯 가지네요. ”

“그렇지, 잘했어요. ”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 서구 가좌동 가좌중학교 특별교실.이 학교와 이웃 제물포중학교의 학생(1~3학년) 17명의 손이 책상 위에서 분주하다. 일종의 ‘수학 놀이’를 하는 중이다.이들은 인천시교육청과 인하대가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수학 완구를 활용한 재미있는 수학 이동교실’ 참가 학생들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박제남 인하대 수학과 교수. 박 교수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조각을 이어붙여 일정 길이의 직사각형을 만드는 방법의 수를 찾아내는 게임을 하면서 학생들이 맞춘 답을 차례로 칠판에 적어나갔다.

‘1,2,3,5,8,13…’ 여기까진 그냥 의미없는 숫자의 나열인듯했다.

이어 다른 게임이 이어졌다. 모눈종이를 받아든 학생들은 가로,세로가 각각 1cm인 정사각형에 같은 크기 정사각형을 그려 붙여서 직사각형을 만들고,다시 거기에 그 크기(긴 변 길이)의 정사각형을 붙여 더 큰 직사각형 만들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변화하는 한 변의 길이를 순서대로 칠판에 적었다.

‘1,2,3,5,8,13…’ “어, 똑같네. 신기하다.” 앞서 진행한 플라스틱 조각 게임 때와 같은 숫자의 나열이 만들어진 것이다. “잘 보세요.앞의 두 숫자를 합치면 뒤의 숫자가 만들어지지요.”

박교수의 설명에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이런 수의 나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한다.그러나 박 교수는 굳이 그런 설명까지는 하지 않았다.아이들이 ‘수의 법칙’에 신기해하고 흥미를 가지면 그 뿐이기 때문이다. 그게 이날 수업의 목표였다.

2개월째 이런 수업을 진행한 박교수는 “처음엔 눈도 안맞추고 대답도 안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쾌할하게 떠들어가며 수업에 참여한다”며 “교구를 활용하고 생활 속 수학 문제로 이해하기 쉽게 다가간 것이 아이들이 수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된 듯하다 ”고 말했다.

박교수는 영재교육 전문가다.인하대 영재교육원 담당교수로 있으면서 올해 열 살의 나이로 인하대 자연과학계열에 입학한 영재 소년 송유근 군을 발굴해 가르쳤다. 현재 송 군의 지도교수다. ‘영재교육과 학습부진아 교육은 통하는 건가.’ 수업이 끝난 뒤 박교수로부터 얘기를 들어봤다.

◆ 영재 교육과 부진아 교육은 통한다

▶문=영재교육 전문가인데 학습 부진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는 원리는 같은 것인가.

▶답=영재와 학습 부진아는 모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지도해야 한다.안그러면 병적인 아이가 되거나 학습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특히 수학 내용과 관련된 적당한 교구를 도입하면 이해의 속도와 폭을 높일 수 있다. 영재나 학습 부진아 모두 교수법이 어떠냐에 따라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영재가 그런 것처럼 학습 부진아도 방치해선 안 된다.

◆ 쉬운 문제가 제일 좋은 문제다

▶문=수학과 담쌓고 지내는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려면.

▶답=어려운 문제를 잘 푼다는 것과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수학적 원리는 쉬운 문제에 있다. 학습 부진아에겐 쉬운 문제부터 풀게해 원리 자체를 이해하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 유발은 단기간 내에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너무 집착하지 말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강압적 분위기는 수학을 '원수'로 만든다.

◆ 교구와 생활 속 문제로 흥미를 유발해라

▶문=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효율적 방법은 뭔가.

▶답=수학에 흥미가 부족하거나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은 추상적인 개념보다 구체물을 통한 '직접적인 이해'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종이접기를 통한 기하학적 성질 알아내기나 비누막을 이용한 최소값 예측하기 등이 그런 예다. 생활 속 소재도 흥미 유발에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또는 역사 속의 소재를 활용한 수학 문제를 내면 아이들은 일단 관심을 보인다.

◆ 자신감이 열쇠다

▶문=공부가 부족한 아이들은 늘 위축돼 있고, 그러다 보니 지레 포기하게 된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답=부진아의 특징은 흥미도 자신감도 없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주위에서 아이의 조그만 진전에도 크게 격려를 해줌으로써 용기를 북돋워줘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면 어느새 흥미와 자신감이 동시에 생기게 된다.처음엔 어렵겠지만 스스로 해보려는 자세를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열 시간의 수업을 듣는 것보다 한 시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은 부진아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풀이가 풀이집과 다르더라도 수학에서는 여러가지 풀이가 가능하므로 자신의 풀이 방법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 유용하다. 첫걸음은 힘들더라도 결국은 자신감이 '열쇠'다.

글=김남중 기자 <njki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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