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WTO 결과에 "설마" 탄식···아베의 '도호쿠 부흥'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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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가 1심을 뒤집고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조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데 대해 일본 정부는 “(WTO 판정이) 일본 식품의 안전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한국 사례를 시작으로 다른 국가에도 수입규제 완화를 요구하려 했던 일본 정부의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스가 "일본산 안전 사실인정 유지, 패소 지적 옳지 않아" #'도후쿠 부흥' 앞세운 아베 정권 타격…전략 수정 불가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2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WTO 보고서에는 일본산 식품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며,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분히 통과한다는 1심의 사실인정은 유지되고 있다”면서 “이번 사안에 대해 우리나라가 패소했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중앙포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중앙포토]

요시카와 다카모리(吉川貴盛) 농림수산상 역시 “상급위의 판단은 (1심) 패널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일본 식품의 안전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한국의 조치가 (WTO) 협정에 정합적이라고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판결의 의미를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이어 “한국에 대해 규제조치 전체를 철폐해줄 것을 요구하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은 이수훈 주일대사에게 “수입금지 철폐를 논의하기 위한 양국간 협의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1심과 달리 상소심에서 예상을 깨고 일본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이날 오전 외무성의 경제국장과 수산청 장관이 총리관저에 불려와 대응책을 논의하고, 긴급 기자회견도 열었다. 일본 외무성은 WTO 판정 결과가 나온 지 불과 1시간 가량 지난 새벽 1시쯤, 외무상 명의의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12일 일본 언론들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조치와 관련한 WTO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역전패했다고 1면 기사로 전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12일 일본 언론들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조치와 관련한 WTO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역전패했다고 1면 기사로 전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일본 조간신문들은 “WTO 상급심에서 한국이 역전 승소했다”는 소식을 1면 기사로 전했다.

아사히 신문은 “한국에 시정을 권고했던 제1심을 크게 수정해 수입금지를 용인했다. 사실상 일본의 역전패다”라고 전했다. 요미우리 신문 역시 “최종심에 해당하는 상급위가 1심에 상당하는 패널 판정을 뒤집은 형태로, 일본이 역전패 했다”고 보도했다.

결과가 나온 직후 외무성 간부는 요미우리 신문에 “상정 외의 결과다. 정보수집을 서둘러, 향후 대응을 검토해나가겠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일(현지시간) WTO가 홈페이지에 최종판결 결과를 공개하자, 제네바에 있었던 일본 통상관계자들 사이에서 “설마”라는 탄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고 보도했다.

12일 서울의 한 수산시장의 수산물 원산지 표시. [연합뉴스]

12일 서울의 한 수산시장의 수산물 원산지 표시. [연합뉴스]

WTO 판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닛케이 신문은 ‘WTO가 돌변해 애매한 판결을 내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상급위가 공개한 최종보고서는 (한국이) 수입을 제한할 때의 기준이 정당한지 판단하지 않았고, 식품에서 용인할 수 있는 방사선레벨 등 안전성 문제에 대한 견해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상급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결원”이라는 점을 문제 삼아 “WTO의 분쟁해결 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됐다”고도 지적했다.

당초 상소심에서 1심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경우, 한국의 사례를 지렛대로 중국, 타이완 등 다른 국가에 수입규제 완화를 압박할 계획이었던 일본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도호쿠(東北) 지역 부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던 아베 정부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현재 일본산 식품 수입을 규제하는 국가·지역은 23곳에 이른다. 요미우리 신문은 "다른 규제국에 비해 특히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는 한국의 제한 조치가 용인됐다는 것은 타격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스가 장관은 “농림수산품의 수출 촉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지방 살리기, 농업개발 정책의 최우선 정책 중 하나”라며 “계속 한국을 포함한 관계국에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해 수입 규제를 철폐·완화하도록 끈기있게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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