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부당노동행위하면 회사도 벌금' 조항…헌재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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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헌법재판소가 소속 종업원이 부당노동행위를 해서 처벌 될 때, 소속 법인에 대해서도 같이 처벌을 받도록 한 조항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자동차 제조회사인 A 주식회사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운영하는 것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사는 노동조합법에 따라 직원들과 함께 기소됐다. 노동조합법 94조는 ‘법인의 대리인ㆍ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 그 법인의 업무에 관해 제90조의 위반행위를 한 때에는 그 법인에 대하여도 해당 조의 벌금형을 과한다’고 규정한다.

A사는 2017년 1심 법원인 대전지법 천안지원에 “영업주인 법인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법인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7년 10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책임 주의를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종업원 등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에 대해 법인의 책임에 관해서는 전혀 규정하지 않은 채, 단순히 법인이 고용한 종업원 등이 업무에 관해 범죄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에 대해서도 같은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형사법상 책임 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만약 영업주인 법인이 종업원들의 관리ㆍ감독상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종업원들의 잘못으로 영업주까지 같이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헌재는 이런 단서 없이 법인을 모두 처벌하면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그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형사 처벌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이면서, 법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7월 면책 사유를 정하지 않은 법인의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로 면책 사유가 없는 양벌 규정을 심판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일관된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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