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의 내 고장 희망찾기 ③ '환경농업마을' 홍성 문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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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농법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문당리 마을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지난달 초 함께 모내기를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는 환경농업마을로 유명하다. 문당리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마을 영농조합법인 회장인 주형로(48)씨가 1993년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오리를 이용해 농사를 지으면서다.

"일본에서 배워온 오리농법을 해보자고 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다 '저 사람 미쳤다'고 하데요. 오리가 어떻게 논을 매느냐는 거지요. 그런데 오리가 벼 사이로 다니면서 벌레도 잡아 먹고, 잡초도 뜯어먹고…. 배설물은 거름 역할을 하니 사람들이 감탄을 합디다."

그 이듬해 이웃 농민들 중 19명이 주씨를 따라 오리농법을 시작했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품질 인증을 받았다. 98년부터는 유기재배단체 인증을 받아 현재 문당리에서만 20만 평 정도를 오리농법으로 경작하고 있다.

주 회장은 또 도시민과 함께 짓는 농사를 창안했다.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땅 살리고 농업 살리는 오리농법을 위해 오리를 사서 보내 달라"고 제안했다. 전국에서 600명이 1950만원의 돈을 보내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농촌이 마지막 희망'이라면서 돈을 보내 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리농법은 홍동면 전체로 번졌고 다시 전국으로 퍼졌다. 경작 면적도 수천만 평으로 확대됐다. 지금은 이 농법이 중국의 헤이룽장(黑龍江)성에도 전파됐으며, 머지않아 북한에 전해질 전망이다. 주씨는 올해 5월 평양 근처 청산리농장에서도 오리농법을 가르쳤다.

"사람들은 기술을 감추려 하지요. 하지만 저는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처음엔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 한 가마니를 100만원에 팔기도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계약재배 방식으로 24만원 정도에 팔고 있다.

90가구 239명이 살고 있는 문당리 마을에는 오리농법 말고도 특이한 것이 많다. 유기축산작목반과 쌀작목반, 청년회.부녀회 등이 있고 마을총회가 있다. 마을총회는 이장을 뽑고 마을의 사업계획 등을 함께 상의하는 자리다. 홍동면에는 또 징계위원회가 있다. 농협 간부들과 담당직원, 작목반들로 구성된 작목회의 회장 등이 징계위 구성원이 된다. 농약을 안 쳐야 하는데 잘못해 친다든지 할 때 징계 대상이 된다.

마을 언덕의 환경농업교육관에는 전국 각지의 환경 및 농민단체들이 찾아와 교육과 체험을 통해 문당리 사례를 배워간다. 홍동면에는 생산자 중심의 생활협동조합인 풀무생협, 신협, 풀무고등기술학교, 정농회 등의 단체 말고도 빵.요구르트 공장도 있다. 이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이 공동체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더 대단한 일은 문당리의 발전을 위한 '100년 계획'이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사는 문당리가 아니라 오순도순 마음이 넉넉한 두레공동체가 되고, 자연과 조화로운 문당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함께하는 마을 주민들은 문당리 교육관을 지을 때도 힘을 합쳤다. 모두 함께 기와를 찍고 벽돌을 쌓으며 나무를 깎은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성과물의 소유권은 마을 주민들에게 있다. 주 회장은 "문당리 같은 마을은 20억원이 있으면 1년 만에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무도 못 만든다. 과정이 더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나라 전체가 아름다운 농촌공동체로 바뀌도록 대화하고 경험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꿈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희망제작소 <www.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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