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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의 직격인터뷰

“재판부·전관 변호사에 따라 죽살이 치는 판결 누가 믿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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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이 말하는 사법의 위기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의 인터뷰에서 ’변협 내 진보·보수 성향 모임들의 소통에 주력해 강한 변협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의 인터뷰에서 ’변협 내 진보·보수 성향 모임들의 소통에 주력해 강한 변협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70년 사법 사상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지만 요새처럼 법조계 전체가 진짜 위기에 빠진 적은 없었다. ‘사법 사화’로 표현될 정도로 거셌던 검찰의 사법부 수사로 ‘사법 권력’의 지도가 확 바뀌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관들은 무더기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개혁 대상 0순위로 지목된 검찰이 ‘적폐 수사’의 선봉에 서면서 ‘수사 권력’이 쏠린 것도 아이러니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며 국회를 상대로 고군분투(?) 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보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소수 엘리트주의가 사법 위기 초래 #국회의 판결 공격, 삼권분립 해쳐 #1심 판결 전면 공개로 신뢰 회복 #대통령, 김학의 등 재수사 지시 #의혹 없게 하라는 결단으로 이해 #정치적 의도 있다면 국민이 심판

변호사업계의 상황도 팍팍하다. 사건과 수임료는 줄어들고 진보와 보수단체 간 힘겨루기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 2월 말 50대 회장에 취임한 이찬희(54·사법연수원 30기)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최근 만나 위기의 원인과 실상, 해법을 들었다. 인터뷰 중 “안면 홍조증이 있으니 사진 잘 찍어 달라”며 소탈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 그는 “변협 내 진보·보수 성향 모임들의 소통에 주력해 강한 변협을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국의 핫 이슈인 검찰 과거사 수사 및 청와대의 인사 난맥상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변호사 입장에서 봤을 때 재판의 폐해를 지적한다면.
“판결의 불신은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판결이 재판부마다 다르니까 전관(前官)을 선임하려고 기를 쓴다. 현직 판사들의 전관에 대한 부채의식, 동료의식, 연대감이 만든 폐단이다. 어떤 전관을 선임하느냐에 따라 불구속, 벌금, 집행유예로 결과가 달라진다. 서울구치소에 가보면 수감자의 사건 배당이 어느 재판부로 됐느냐에 따라 ‘넌 죽었다’, ‘넌 살았다’로 예측이 갈린다. 어떤 잘못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다는 게 예측 가능해야 한다. 법적 안정성이 무너졌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재판 직후 정치권의 판사 공격이 극심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해쳤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그동안 전 세계의 많은 법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처럼 법원 앞에 현수막과 1인 시위가 1년 내내 계속되는 건 찾아보기 어렵다. 판결을 못 믿겠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심지어 담당 판·검사 사진까지 붙인다.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위험한 행태다. 국가는 최종 분쟁 해결 기구로 사법부를 뒀고 그 전제는 신뢰다. 3심제, 재심제를 둔 것도 판단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이 1, 2심 판결이 나올 때마다 사법부를 공격하는 건 잘못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삼권분립, 즉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 자칫 인민재판처럼 갈 수도 있다.”
해법이 뭔가.
“이런 걸 시정하려는 게 ‘법관 평가’다. 상층부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법관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대부분의 판사’가 아니라 ‘모든 판사’가 청렴하고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러려면 1심 판결문을 전부 공개해 투명성을 검증받는 게 필요하다. 진짜로 선진화된 법관평가는 ‘판결의 일관성’ ‘예외 인정의 합리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요즘 검찰 수사 도중 ‘변호사 비밀유지권의 침해’가 종종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 법무팀·대형 로펌·개업 변호사의 사무실, 컴퓨터, 핸드폰을 압수수색해서 범죄 자료들을 다 가져가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 별건 수사다. 변론권 침해이기도 하다. 중세 시대에 정적 제거하는 방법이 뭔지 아나. 성당 고해소의 신부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변호사에게 모든 행위를 털어놓고 보호받겠다는 의뢰인의 자료를 통째로 가져가 혐의 입증에 사용한다면 고해성사 내용으로 정적을 치는 것과 다를 게 뭔가. 특히 국세청·금융감독원 등은 ‘영치(임의제출)’라는 명목으로 이런 강제수사를 저지른다.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수사 및 조사를 이처럼 손쉬운 방법으로 하는 사이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칫 사법의 근간인 변호사 제도 자체가 흔들릴까 걱정된다.”
요즘 사법부 위기의 원인이 뭐라고 보나.
“일제 잔재의 청산을 제대로 못 해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사법부에도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소수 엘리트주의가 고착화됐고 특권층이 생겼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인재를 골라 쓸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다. 소수를 장악해서 전체를 지배하는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통치술이다.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소수에게는 그 순간부터 ‘인사’ 등에서 엄청난 혜택을 준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원인도 소수 엘리트주의다. 다만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문화에 빠져 살아왔던 거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상고법원 도입 추진 과정에서 법무부와 대한변협은 적대세력으로 보고 철저히 배제했다고 한다.
“상고법원이 좋은 제도냐 아니냐를 두고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문제는 자기 임기 중에 상고법원을 관철시켜 큰 업적을 남긴 대법원장으로 평가 받고 싶은 과욕이 사법부를 망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수십명의 판사들이 행정권 남용에 연루돼 탄핵, 징계, 기소 대상이 됐는데 처벌보다 환부를 도려내는 게 중요하다. 미증유의 혼란을 겪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 다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권이 바뀌고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시를 내렸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이들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규명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나는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 또 하나는 우리 사회를 바로세우는 작업 측면에서다.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한 게 수사의 가이드라인, 압력이라면 문제지만 국가 지도자의 결단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의 경우 갑자기 없던 사건을 만들라는 게 아니라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조사해 재수사로 연결된 것 아닌가. 이대로 덮으면 의혹과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약촌5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 역시 재심에서 뒤집힌 것 아닌가. 대통령 지시가 수사 압력으로 인식되지 않게 하려면 검찰·경찰 등 수사 기관이 잘해야 한다.”
당시 수사 방해 의혹 대상자 중에 야당 대표와 대통령 저격수 국회의원이 들어 있다. 정국 물타기, 선거용 아니냐는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어떤 정치적 의도가 끼어 있다면 문제다. 하지만 국민들이 현명하다. 선거 때마다 여야의 힘을 황금 분할하지 않았나. 과거 역사의 고비를 넘긴 주축도 지도자보다 국민의 선택이었다. 정치적으로 불순한 의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인위적인 작업이라고 판단되면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다.”
적폐 수사의 피로감도 큰 것 같은데
“워낙 갑자기 이전 정부(박근혜)가 무너지면서 현 정부가 덥석 권력을 잡아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던 게 문제다.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과거의 고리 끊기를 하고 있는데 정리가 쉬운 게 아니다. 시계의 시침처럼 천천히 가면 지루함이 커지고 초침처럼 막 숨 가쁘게 가도 피곤하기 때문에 분침처럼 적정한 속도로 가는 게 맞다. 어쨌든 지금은 피로감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거기다 북한 문제까지 교착 상태다.”
최근 7개 부처 장관 인선과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검증 부실 책임론은.
“인사는 만사다. 국정 운영의 큰 틀에서 인사권자인 대통령이나 여당이 상대편 사람까지 아우르는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다. 인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인사 검증 항목이나 기준 제정권을 국회로 넘겨서 여야 합의로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거기에 합당한 인사만 고위 공직자 후보로 추천한다면 여야가 바뀌었을 때도 무리한 인사나 무리한 반대가 줄어들지 않겠나.”
협회장으로서 역점 사업은.
“우리 사회, 특히 법조계의 원칙 세우기에 매진하겠다. 내가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이찬희 때 변호사들 간의 갈등이 없었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민변이든, 보수 성향의 한변이든 좋은 의견을 내면 경청하고 실행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법무사들의 소송대리권 요구는 국가의 기틀을 흔드는 일이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소송을 맡게 되면 결과가 바뀔 수 있다. 로스쿨 도입 취지에 맞게 변호사업계로 법무사·변리사 등 유사 직종이 신규로 유입하는 건 막을 수밖에 없다.” 

◆이찬희

충남 천안 출신으로 연세대 84학번이다. 사법시험에 늦깎이(사법연수원 30기)로 합격했다. 북한법을 전공, 북한이탈주민 지원 및 남북 통일 법제 정비 업무에 정통하다. 참여연대 실행위원을 지냈고 ‘스폰서검사 사건특검’(2010년)에 참여했다. 2017년부터 2년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뒤 올 초 대한변협 회장에 단독 출마, 당선했다.

조강수 논설위원
※이정원 인턴기자가 기사작성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