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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재·김상덕·고금숙씨 영장<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89년1월31일부터 2월16일까지 김대중 평민당 총재 유럽순방 단일행으로 출국, 헝가리 부다페스트시 호룸호텔에 투숙 중이던 2월 중순 오후 9시쯤 일행 서경원과 함께 헝가리 관광소감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서경원에게『역시 사회주의국가다.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 같다』고 하자 서경원이『내가 평양에 가봤는데 그곳 사람들 표정도 조금 굳어 있더라』 말해『서형, 정말 평양에 갔다왔소』라고 반문했음.
또 그 자리에서 서경원 으로부터『85년3월 서독교포인 정모 목사의 주선으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북한 해외파견요원을 만나 입북주선을 부탁하고 88년8월19일부터 21일까지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허담을 만나 회담했다』『나는 김일성에게 통일 방안은 무엇이며 북한출신 남한 성직자들이 북한에서 선교활동을 하도록 해달라는 제의를 했다』『김일성은 나의 제의에 대해「통일은 물론 평화통일이다. 남북한 불가침조약을 맺어야 한다. 총을 겨누고 있으면서 경제회담이다, 적십자회담 이다라고 하는 것은 모두 허위다」라는 내용의 말을 내게 했다』는 서경원의 입북 사실을 들어 서경원이 반 국가단체인 북괴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으로 탈출, 그 단체의 수괴와 회합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귀국 후 이를 수사기관, 또는 정부기관에 고지하지 않았음.
또 89년 6월 중순 일자미상 오후3시쯤 서울 여의도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서경원을 만나 그로부터『평양에 갔다온 것에 대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방북 한 것을 추기경에게 보고했는데 그때 함세웅 신부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음.

<김상덕 가농회장>
①피의자는 88년11월께 가농회관 사제관에서 가농지도신부 정호경(43·현 천주교 안동교구 함창 본당 주임신부)으로부터『서의원이 북에 갔다왔다』『지난 8월 체코에서 북한의 특별 전세기를 타고 평양에가 김일성을 만나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
②88년12월 하순 서울 명동 전진상 회관에서 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 주최로 열린 망년회를 마친 뒤 서의원의 집 초대를 받아들여 서울 북아현동 183 서의원 집에 도착.
피의자는 서의원과 TV를 함께 보던 중 서의원이『평양거리는 깨끗하고 사람이 많이 북적대지 않고 한산하다』『평양 지하철은 깊고 내부 벽은 조각으로 잘 장식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피의자는 또『서독에 있는 모목사의 주선으로 지난 8월 체고 프라하에서 특별기를 타고 갔다』『가서 김 별장에서 김을 만나고 평양 시내구경도 했다』『이 자리에서 천주교 평양교구 부활문제, 남북농민이 종자와 가축을 교환하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했더니 김이 좋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피의자는 서의원에게『통일은 해야하지만 그렇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자네는 입이 가벼우니 조심하라』고 당부했음.
③89년4월초 대전시 가농회관 사랑방에서 가농 전국본부 사무국장 정성헌 으로부터『서의원이 평양 다녀왔다는 얘기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88년11월께 정 신부로부터 들었다』 고 대답해 서의원의 밀입북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서도 이를 정보·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자로 구속하지 않으면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 자임.

<고금숙씨>
피의자는 서울 공덕국교6년 재학 중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서 지내다 64년 전남 곡성군「동광원」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해오다 68년 봄 모 홍화례의 권유로 서울 답십리 집으로 돌아와 가사를 돌봐왔다.
피의자는 71년「상공」노트공장 사장 안병옥 (47)과 혼인, 1남1녀를 낳고 살아오던 중 81년 남편의 사업자금 지원을 위해 진빚 3천여 만원의 변제를 놓고 남편과 불화가 생겨 가출, 별거중인 자로 64년 서의원을「동광원」에서 만나 68년 봄 결혼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한 뒤 88년10월께 서의원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20여년 만에 재회한 뒤 매월 2∼3회 접촉하며 내연의 관계를 유지해온 자임.
①피의자는 88년11월초 서울 인의동 모 식당에서 서의원 으로부터『사실은 내가 이북을 다녀왔는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나 자신과 가족이 호의호식하는 것만이 나의 행복은 아니며 불쌍한 이북 동포도 같이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생각 끝에 유럽여행 중 평양에가 김일성을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②피의자는 88년1월 하순 서의원을 만나『서독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사업자금을 가져오기 위해 방량균을 서독에 보낼 계획이다』는 말을 듣고 89년1월초 다시『방비서 귀국 때 수첩갈피 속에 미화를 숨겨 겉장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은밀히 들여왔는데 돈이 기대한 만큼 오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수첩을 목격하는 등 서가 방을 서독에 보내 미화를 반입한 사실을 알았다.
③89년3월말 서의원을 만나『자네 집에 당분간 피신해 있고 싶다』『문목사 보다 내가 먼저 북에 갔다왔으나 정부에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자네 집에 피신해 있고 싶다』는 말을 듣는 등 서의원의 밀입북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정보·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자로 구속하지 않으면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 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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