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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 없다’는 김은경에 영장친 검찰, 그 안에 담긴 셈법은

중앙일보

입력

서울동부지검은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 출신 장관에 대한 검찰의 첫 구속 수사 시도다. [연합뉴스]

서울동부지검은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 출신 장관에 대한 검찰의 첫 구속 수사 시도다.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첫 소환 후 영장 청구까지 50여일간 고심했다.

검찰, 김은경 소환 50여일 만에 영장청구 #신병 확보 뒤 ‘靑진술’ 확보하겠다는 계획 #“김은경 직책 높지만 주범이라 단정안해” #檢, 靑·환경부 ‘공모관계’에 주력

지난 1월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장관 보고용 폴더'에 담긴 전(前) 정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조치 문건' 등 물증을 확보했고, 2월 초 소환된 김 전 장관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증거 인멸'의 우려도 갖춘 상황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대검과 조율하며 추가 조사를 진행했고 김 전 장관의 신병 처리에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쏟았다.

김 전 장관은 임기 중 국회에서 "나는 산하기관의 인사권이 없다"며 '허수아비 장관'임을 자처한 인물이다. 그런 김 전 장관에게 검찰은 왜, 그리고 지금 영장을 청구한 것일까.

청와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앞두고 이뤄진 검찰의 결정에 법조계에선 다양한 셈법이 담겨있다고 보고있다.

①"김은경 전 장관, 국회 발언과 달리 적극적 개입 정황"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산하기관 인사권이 없다"고 발언한 것과 실제 사실 관계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월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다수의 문건을 통해 김 전 장관이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인사에 대한 사퇴 동향과 감찰 계획 문건이 '장관 보고용 폴더'에서 나온 것이 결정타였다. 복수의 환경부 공무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와 관련한 다수의 문건은 장관님 보고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1월 14일 환경부와 한국환경관리공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차량으로 나오고 있다. [뉴시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1월 14일 환경부와 한국환경관리공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차량으로 나오고 있다. [뉴시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며 적용한 대표적인 죄명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지난 2월 초 검찰 조사에서 "사퇴 동향을 보고받은 것은 맞지만 표적감사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입장이 향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봤고 구속수사가 진상규명에 효과적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②靑수사 앞두고 "법대로 하겠다" 추가 영장 가능성도 

검찰의 영장 청구는 청와대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 조사를 앞두고 결정됐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변호사는 "김 전 장관을 시작으로 혐의가 소명된 청와대 관계자들도 똑같이 영장을 칠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를 담당했던 청와대 행정관들을 이미 두 차례 이상 조사했다. 그 윗선이자 환경부 산하기관 채용비리 개입 혐의를 받는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도 조사할 예정이다.

야권에선 검찰이 "김 전 장관이라는 '깃털'을 수사하며 청와대란 '몸통'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사건의 주범이 누구인지는 아직 단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여성 비서관들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 왼쪽이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 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중앙포토]

지난해 여성 비서관들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 왼쪽이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 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중앙포토]

김 전 장관이 청와대의 비서관·수석보다 직급은 높았지만 청와대와 환경부가 일종의 상하 조직처럼 운영됐기 때문이다.

향후 검찰의 수사는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청와대와 김 전 장관의 '공모 관계' 규명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신 비서관에 이어 조현옥 인사수석의 소환 가능성도 점쳐진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금 수사는 '김은경 영장' 단계에 있는 것일뿐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③'표적감사·채용비리' 범죄소명 자신, 양승태 케이스와 유사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를 결정한 또다른 배경에는 '범죄가 강도높게 소명됐다'는 내부 판단 때문이다. 영장 발부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환경부와 산하기관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통해 김 전 장관의 혐의를 입증할 다수의 문건과 이메일을 확보했다. 지난 2월 김 전 장관에 대한 첫 소환 뒤 50여일간 환경부 관계자들을 조사하며 물증을 보충할 진술도 추가했다.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영장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김 전 장관의 부인이 변수가 되지 않을 만큼 증거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동부지검 정문의 모습.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동부지검 정문의 모습. [연합뉴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를 맡은 동부지검에서 대검과 조율을 거쳐 내린 결정일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출신 장관의 첫 구속 수사인만큼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의 부담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수사를 앞두고 핵심 피의자인 김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수사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심사를 앞두고 따로 드릴 말씀은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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