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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노동계 요구안만으로 마무리?…경영계 강력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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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에 불만이 있다. 대체근로 등을 주장하는데 수용하기 어렵다."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개선위, 3월말로 논의 종료 #박수근 위원장 "경영계에 불만…대체근로 못 받는다" #"3월 말까지 합의 않으면 국회로 논의 과정 등 제출" #노동계 요구안 다룬 1차 논의는 공익위원 권고안 제출 #경영계 요구안 다룬 2차 논의는 공익위원 권고 없이 넘겨 #또다른 공익위원 "공익위원 구도가 6대1로 노동계 편향" #"핵심인 경영계 방어권 제대로 논의 않고 곁가지만 다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박수근 위원장(한양대 교수)은 18일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주장했다. 이승욱 공익위원(이화여대 교수)도 "경영계 쪽에서는 전혀 협상의 의지를 감지할 수 없다"고 거들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된 논의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다.

이 소식을 접한 또 다른 공익위원인 김희성 강원대 교수가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초 1차 논의에선 단결권 확대 등을 담은 노동계 요구안을, 2차 논의에선 대체근로 같은 경영계 요구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2차에서 논의 중인 핵심 사안을 아예 못 받는다고 위원장과 공익위원이 말하면 협상이 되겠는가"라고.

경사노위 노사제도개선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8명의 공익위원이 참여한다. 경사노위가 정부와 협의해 4명의 공익위원을 추천하고, 노동계와 경영계에서 각 2명씩 추천해 꾸려졌다. 정부는 오는 6월 ILO 설립 100주년을 맞아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기념해 ILO에서 연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다. 노동계도 ILO 협약 비준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이유로 "사실상 협상장의 구도는 6:1"이라고 했다. 그는 1월 말 경영계가 추천한 권혁 교수와 함께 사퇴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논의 내용이 한쪽(노동계)으로 편향되고, 2차 논의에 따른 공익위원안마저 사전에 유출돼 노동계로부터 여론몰이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사퇴 이유를 전했다. 김 교수는 '경영계 목소리가 전혀 없으면 안 된다'는 경영계의 설득을 받아들여 2월 말 복귀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관계제도 및 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 기자간담회에서 박수근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박 위원장 및 공익위원들은 "3월 말까지 관련 쟁점에 대해 일괄적으로 타결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뉴스1]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관계제도 및 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 기자간담회에서 박수근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박 위원장 및 공익위원들은 "3월 말까지 관련 쟁점에 대해 일괄적으로 타결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뉴스1]

박 위원장은 이날 "ILO 핵심 협약 비준과 이에 따른 노동제도 개선 문제 논의를 3월 말까지 논의하고, 노사 간 합의가 안 되면 논의 내용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논의에선 실업자와 소방관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노조할 권리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2차 논의에선 경영계가 대항권 차원에서 요구한 대체근로 허용, 직장 점거 금지, 부당노동행위 폐지 등을 다루기로 했다.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한 선진국에선 보편화한 제도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해왔다. 오히려 산별노조 활성화, 쟁의행위 대상과 목적 확대, 쟁의행위 관련 민사책임과 형사처벌 개선 등을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노사제도개선위는 국회에 1·2차 논의 내용을 모두 제출한다. 그러나 국회로 넘어가는 문서의 내용은 다르다. 1차 논의에선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해 공익위원이 권고안을 만들었다. 이를 제출한다. 그러나 2차 논의와 관련해선 노사 합의가 없으면 공익위원 권고안도 내지 않을 방침이다. 상황은 같은데, 결론은 다른 셈이다.

이에 대해 공익위원들은 '노사정 합의를 위한 공익위원 제언'을 통해 "(1차 논의 뒤)공익위원 합의안은 우리나라 특유의 노사관계 관행도 충분히 고려했다는 점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노동계 요구만 담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문구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해설했다. "우리나라는 산별노조인 유럽과 달리 기업노조 중심이다. 그래서 '노조 임원은 재직자 중심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해 권고안에 넣었다. 이를 두고 우리의 관행을 고려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라고. 그러면서 김 교수는 "당초 (공익위원들은) 이마저도 없애려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하며 "이걸로 생색을 내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1차 논의 뒤 나온 권고안에 경영계 추천 공익위원인 그와 권 교수가 동의한 이유에 대해선 "1·2차 논의를 종합해 포괄 타결하자는 데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공익위원들은 노조의 사업장 점거나 단체협상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김 교수는 "대체근로나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ILO 협약 논의에서 사용자의 방어권과 대항권, 경영권이 침해당하게 된다"며 "단협 유효기간 등의 문제는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경영계는 이날 박 위원장 등의 기자간담회 내용에 강하게 반발했다. 경총은 입장문을 내고 "1단계 노동계 제기사항→2단계 경영계 제기사항→3단계 병합 논의를 하기로 약속했으나 경영계 요구는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사실상 (위원회)활동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노사관계는 투쟁적·대립적·갈등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고비용 저생산성의 노사관계가 국제경쟁력 약화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노사관계 관행도 충분히 고려했다"는 공익위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경총은 "단결권 확대에 따른 사용자의 우려를 방지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적·균형적 제도개선이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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