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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소각 표현의 자유 논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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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연방대법원은 최근 정치적 의사표현의 한가지 수단으로 국기를 불태우는 행위에 대해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처벌할수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미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미대법원의 「윌리엄·브레넌」판사는 지난21일 격론 끝에 5대4 한표의 다수로 내린 판결에서 『국기에 대한 모독행위를 처벌한다해서 국기가 더 신성하게 되지 않으며 이를 처벌할 경우 이 소중한 표상이 대변하고 있는 자유를 희석시킨다』고 말했다.
미국은 알래스카주와 와이오밍주를 제외한 48개주가 현재 성조기소각행위를 국기모독죄로 처벌해 오고있다. 이번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로 국기모독처벌이 앞으로는 위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넌」판사는 이번 판결이 국기취급에 관한 연방법규를 무효화하거나 의사표현형식이 아닌 국기소각에 대해 주정부가 처벌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이번 판결은 「평화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의 경우에만 정당행위로 인정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헌법해석의 기능으로 규범 및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미대법원은 60년대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 이번 국기소각과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판결을 내린바 있다.
당시 경제·인종·사회등 각분야에서 많은 문제들이 터져 나왔지만 월남전을 둘러싼 논란이 최대쟁점이었다. 한쪽에서는 전쟁에 관한 결정은 정부가 내릴 일이라고 생각한 반면 일부에서는 정부결정에 앞서 민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으로 맞섰다.
학생들의 반전시위가 격화되고 대학건물점령, 대규모행진, 그리고 징집영장소각이 유행처럼 전국을 휩쓸었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반전시위주동자 7명에 대한 소위 「시카고 세븐」재판은 몇가지 유형의 표현의 자유행태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했다.
국기에 어떤 평화를 상징하는 물건을 부착하거나 팔목에 검은 띠를 두르는 것등을 「상징적 의사표현」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징집영장을 소각하는 행위는 보호대사에서 제외됐다. 성조기에 관한한 그때까지만해도 위·아래를 거꾸로 게양함으로써 항의의사를 나타내는 학생은 있어도 소각하는 시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낳은 사건은 84년에 발생했다. 텍사스주 댈라스시에서 개최된 공화당전당대회에 대해 항의하던 한시위자가 석유를 뿌려 성조기를 소각했다. 그는 텍사스주 국기모독죄위반 혐의로 징역 1년, 벌금 2천달러를 1심에서 선고받았다. 그러나 텍사스 항소심은 작년 1심을 뒤집었고, 이어 이번 연방대법원이 이를 확정한 것이다.
미국의 신문들은 이같은 대법원판결을 일제히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했다. 수정헌법 제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웅변적으로 확인한 기록적인 판결이라고 표현했다.
판결에 동조한 5명의 판사중에는 「레이건」전대통령이 지명한 2명의 보수주의적 판사도 포함돼있어 눈길을 끌었다.
「브레넌」판사는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피고는 이 나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소됐다. 그러나 그러한 불만의 표현은 수정헌법 제1조가 지니는 가치의 핵심이다.
어떠한 사상에 대해 사회가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그같은 사상의 표현을 막을수 없다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의 기본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미전역에서 분노의 물결이 일고있어 국기모독행위에 대한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것 같지 않다.
「윌리엄·렌퀴스트」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소수의견을 대변, 성조기의 상징적 가치를 미국의 역전을 열거하며 강조했다.
「부시」대통령도 『이 판결은 치명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불과 3개월전 성조기를 마룻바닥에 까는 것을 불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던 상원은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97대3의 압도적 다수로 채택하기도 했다.
국기를 불태우는 것을 과연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는가, 국가의 상징인 국기를 소각하는 행위까지 수정헌법 제1조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찬반양론은 상당한 기간 미국의 여론을 갈라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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