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웃음 되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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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노조원들은 27일 오전9시5분쯤 총회개회 선언에 앞서 분신해 숨진 고이석규·이상모·박진석씨등에 대한 묵념을 했는데 이때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자 모두가 숙연한 표정.
이어 양동생위원장이 노조측의 방향선회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사과하고 구속자 석방문제에 대해서는 집행부간부 80여명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말하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박수와 『우』하는 야유가 교차해 노조내부의 분위기를 엿보게 했다.
○…대우조선 근로자들은 투표일인 27일 오전7시쯤부터 이른 출근길에 나섰는데 통근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탓으로 조선소행 시내버스는 초만원.
근로자들은 대부분 조간신문을 손에 말아쥐고 있었으며 정문입구등에 놓여있는 노조간부일동 명의의 사과성명서를 집어들고 낱낱이 읽어보는가 하면 동료 근로자들과 찬반투표에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종합운동장에서 잠정합의안 통과여부를 가리는 조합원투표가 계속되는 동안 양동생위원장등 조합집행부는 『전체 투표율이 올라가야 통과전망이 밝다』며 투표에 참가하는 조합원수에 크게 관심.
조합간부들은 『온건파 근로자들이 많이 참가해야 회사에도 좋은 결과를 낳는데 회사측이 이날도 통근버스를 운행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털어놓기도.
한편 양위원장은 『이번 투표결과가 부결로 나오면 모든게 끝』이라면서도 『조합원대부분이 자기운명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며 결과를 낙관하는 밝은 표정.
○…노조집행부·대의원등 간부 일동은 27일 오전 사과성명서를 내고 이번 투쟁에서 간부들의 지도력 상실과 운동방향성 제시가 부족했음을 솔직히 고백.
노조간부들은 성명서에서 대의원대회의 번복 결정이 노조조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공권력에 대한 항복이지만 다음 싸움을 위해 이번 굴욕적 패배를 딛고 「2보전진」을 위한 「1보후퇴」를 하자고 호소.
한편 이날 의장부문 조합원 윤혜원씨의 이름으로 「조합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 나란히 배포됐는데 윤씨는 이 유인물에서 『노조총회직후 대의원·집행부가 사태의 책임을 지고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 벌써부터 책임소재를 둘러싼 마찰을 노출.
○…27일 임금인상 잠정합의안 수용여부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잠정합의안 수용으로 결판나자 근로자들은 물론 가족들과 장승포·거제지역 주민들은 너나없이 환영.
장승포시 시정자문위원장 배길송씨(48)는 『조합원들의 「훌륭한 결단」을 온시민이 환영할것』이라고 말했고, 근로자가족 김순임씨(32)는 『장기간 노사분규로 웃음을 잊고산지 오래』라며 『이제야 두다리를 뻗고 편한 잠을 잘수 있겠다』며 함박웃음.
○…공권력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에서 노조측이 다시 급선회하자 이미 옥포에 도착한 경찰병력 3천4백여명은 한시름 놓은듯 회사주변 아주국교에서 고현매립지와 거제경찰서쪽으로 철수.
동원된 전경들은 대기상태가 길어지자 아예 바닷가로 나가 낚시를 하거나 웃통을 벗고 족구에 열중하는등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
○…투표가 진행된 종합운동장 주위에는 조합원들이 아닌 관리직 사원들까지 몰려나와 큰 관심을 표명.
관리직 사원들은 『이날 투표에 참가하는 것은, 노조원들뿐이지만 이 투표가 결정하는 것은 비조합원들을 포함한 회사전체의 운명』이라고 말하면서 투표절차가 찬성쪽으로 기울기를 기대하는 초조한 모습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노조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이 어떤 촉으로 표를 던졌는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찬성쪽으로 기울어진 표가 많은 분위기인데도 노조원들은 『이날 투표에서 반대표가 나온다해도 그 반대표는 회사정상화에 대한 반대나 잠정합의안에 대한 것이기보다 변덕이 죽끓듯했던 노조집행부와 대의원들에 대한 반대일것』이라며 색다른 해석.
투표장 주위의 일부 강경노조원들은 『회사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라도 노조간부들부터 먼저 갈아치워야 된다』고 성토하면서도 『그러면 회사자체가 먼저 끝장나는게 아니냐. 일단 회사를 살려놓고 집행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된다』는 온건파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큰 반발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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